#. 그로부터 1년 뒤, 잘나가던 신원그룹은 뼈아픈 성장통과 마주한다. 고속 성장하는 와중에 내실을 미처 다지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그룹이 거느리던 전기회사, 골프장, 전자회사, 빌딩 등을 모조리 팔았다. 13개나 되던 브랜드는 5개로 단촐해졌다. 당시 70% 가까운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그렇게 5년이 지난 후 신원은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하며 다시 한번 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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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
‘추락과 부활’이라는 주홍글씨.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역사를 걸어온 신원그룹의 발자취다. 그 중심엔 창업주이자 40년 넘게 신원을 이끌고 있는 박성철 회장이 있다. 박 회장은 그룹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경영 정상화를 시킨 인물. 업계에선 승부사로 통한다.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 이후 그의 목표는 더 커졌다. 과거의 영예를 되찾고 글로벌 패션명가로 발돋움하는 것. 하지만 그 길이 순탄치 만은 않아보인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비교적 조용하게 지내온 박 회장에게 최근 일생일대의 악재가 겹쳐서다. 그룹 안팎을 둘러싼 ‘3가지 악재’로 인해 신원의 행보 역시 주춤거리고 있다.
◆악재 하나… 증여세 포탈 '덜미'
박 회장의 가장 큰 근심은 탈세 의혹이다.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조세포탈 혐의가 드러난 것. 국세청은 이미 지난 1월부터 4월 초까지 신원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왔다. 그 결과 최근 박 회장을 11억원가량의 조세포탈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세청은 또 박 회장이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가족과 지인 등의 명으로 주식을 매입하고도 증여세를 내지 않은 혐의로 190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박 회장은 지난 1999년 신원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신원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보유하던 신원 주식 16.77%를 회사에 모두 무상 증여했다. 현재까지도 박 회장은 단 한주의 신원 주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
하지만 그는 부인인 송모씨가 대주주로 있는 광고대행사 티앤앰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난 2003년부터 신원의 대표이사직을 유지해왔다. 송씨는 신원의 1대 주주이자 티앤앰커뮤니케이션즈의 주식 26.6%를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의 세 아들도 이 회사의 지분을 각각 1%씩 갖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박 회장 등을 상대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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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 DB |
◆ 악재 둘… 편법 경영권 확보 '도마'
우려했던 티앤엠커뮤니케이션즈가 도마에 오르면서 박 회장이 편법으로 회사 경영권을 취득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는 그동안 신원이 가진 지배구조 이슈에 적잖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지배구조만 놓고 보면 최대주주인 티앤엠커뮤니케이션즈가 신원이 100% 지분을 보유한 신원지엘에스, 신원네트웍스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가 명목상으로는 신원의 광고대행사 역할을 하고 있지만 ▲별다른 영업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점 ▲주식소유를 통해 타법인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점 ▲워크아웃 졸업 시점부터 주식을 사들여 1대주주가 된 점 ▲지분구조나 매출 등과 같은 실체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점 등을 미뤄 일종의 페이퍼컴퍼니 성격이 짙다고 본다. 사실상 박 회장이 회사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만든 회사라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부실기업 사주가 기업회생 절차의 허점을 이용해 차명으로 경영권을 되찾고, 그 과정에서 각종 탈법을 저지르는 일 등은 줄곧 있어 왔다”며 “단 한주의 지분도 없는 회장이 실질 경영권을 쥐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티앤엠의 지배구조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 박 회장이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정·관계나 금융계에 금품 로비가 있었는지 여부까지 들여다 볼 것으로 전해졌다.
◆ 악재 셋… 신뢰기업 '먹칠'
‘믿을 신(信), 으뜸 원(元)’. 신원이라는 사명에 담긴 박 회장의 경영철학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평소 ‘신뢰와 정도’, ‘깨끗한 기업’을 강조하며 ‘나누고 베푸는 것을 기업의 소명’이라 여겨온 그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40여년간 교회 예배에 단 한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신앙심이 남다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탈세 연루 사건은 워크아웃 위기보다 박 회장이 쌓아온 신뢰도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비자 신뢰도 마찬가지다. 박 회장 입장에서 더 가슴 아픈 것은 제자리 걸음이던 신원그룹의 매출이 최근 반등세를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간 5000억원대에 정체돼 있던 신원 매출은 지난해 6000억원대로 성장하며 길고 긴 부진의 늪을 벗어나는 참이었다.
신원그룹 한 관계자는 “이번 일은 워크아웃 당시 타인명의로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정확히 세법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것”이라며 “㈜신원이 세무기간동안 추징당한 금액은 2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번 조사는 신원과는 무관한 회장 개인적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세금을 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납부할 계획이고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편법 경영, 정·관계 로비 등은 왜곡된 부분이 많다”며 “검찰에서 조차 작은 사건이라 아직까지 배정 조차 안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탈세 혐의로 시작된 편법 경영 논란, 그리고 추락한 신뢰까지. 위기 때마다 늘 오뚝이처럼 일어난 그가 과연 이번 악재는 어떻게 털어낼까. 또한 검찰 조사가 끝난 후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