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지난해 12월31일. 전북 전주시 소재 국민연금공단 내부가 술렁였다. 국민연금공단 새 이사장 취임식이 기습적으로 열려서다. 새 기관장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경질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선임할 때 취임식 전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임명일과 임명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번엔 사전 통보 없이 취임식을 단행했다. 출근 저지에 나서려던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공단 노조)조차 취임식 소식을 당일 오전에 듣고 부랴부랴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그를 바라보는 국민연금공단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가 장관직에서 경질된 지 4개월 만에 현직으로 복귀했기 때문. 그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해 8월 장관직에서 경질된 바 있다. 공단 노조가 출근 저지투쟁을 벌이고 시민단체와 일부 내부직원조차 그의 선임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공단 노조와 사회단체는 “그는 이사장 자격이 없다”며 자진사퇴를 요구했고 국민연금공단 측도 “(문형표 이사장 선임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공식입장 밝히기를 거부했다. 정치권도 반대기류에 합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 이사장 임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국민연금과 관련한 정부의 어떤 정책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사권을 가진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정부는 문 이사장을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편작업의 적임자로 판단했다. 실제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를 거친 연금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문 이사장 선임을 두고 정부와 업계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국민연금공단의 미래는 당분간 험난한 파고가 예상된다.


/사진=뉴시스 김진아 기자
/사진=뉴시스 김진아 기자

◆낙하산·연기금 공사화 ‘논란’
그의 선임을 두고 불거진 논란은 크게 두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낙하산 인사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감사원 결과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는데 그를 기관장으로 선임한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것.

감사원은 현재 공무원을 대상으로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애초 지난해 12월쯤 감사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달 말 또는 다음달로 미뤄졌다. 문 이사장도 메르스 사태 관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공단 노조 측의 설명이다.


김영균 국민연금지부 노조위원장은 “감사원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장관직에서 경질된 사람이 현직으로 복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이번 인사는)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와 여론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보건의료시민단체인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성명을 내고 “국민의 반대에도 인사참사가 발생했다”며 “문형표 이사장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아고라 청원에선 2400명에 이르는 누리꾼들이 반대 의견을 냈고 일부 시민단체는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두번째 논란은 기금운용본부 독립공사화 추진이다. 복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복지부 산하의 독립공사로 떼어내고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의 전문성을 강화해 기금의 수익성을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 중이다. 이 연기금은 약 500조원에 달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노동계는 물론 야권의 반대가 만만찮다. 기금본부가 공사로 개편돼 기금운용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강해지면 연기금이 경기부양 등 정책적 목적에 따라 활용되면서 시장에 종속될 수 있다. 결국 국민이 낸 연기금이 정부와 정치권의 뒷돈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셈.

최광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자진 사퇴한 것도 기금운용본부 독립을 반대하면서 보건복지부와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0월27일 이와 관련해 자진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문 이사장은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다. 문 이사장은 취임식에서 “기금운용본부의 조직역량을 강화하고 운용의 전문성과 중립성,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거대한 기금규모에 걸맞는 조직체계 개편과 인적자원의 전략적 배치가 필요하다. 성과중심의 보상체계로 선진화된 투자와 운용시스템을 정착하겠다”고 연기금 개편 의지를 재확인했다.

◆효율적 연기금 운용체계 마련해야

상황이 어찌 됐든 그는 앞으로 3년 동안 500조원의 기금을 운영하는 수장이 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문 이사장과 공단 노조 간 갈등을 어떻게 봉합할지 여부다. 그는 바람직하고 안정적으로 국민연금공단을 이끌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노동계와 시민단체를 설득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연기금 투자다. 전국민의 노후생활자금인 국민연금기금을 잘못 투자하면 문 이사장을 비롯해 정부에 적잖은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우선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하는 데 그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도 그의 몫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최광 전 이사장을 비롯해 홍완선 국민연금기금 운용본부장이 내홍 끝에 물러나 조직이 혼란스런 상태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와의 갈등이 두드러진 만큼 두 조직의 관계 재정립을 모색하는 것도 그의 역할로 남았다.

☞ 프로필
△서울고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생경제분과 민간위원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장 △보건복지부장관 △한국개발연구원 재정복지정책연구부 초빙연구위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