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대형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과 감사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가 지방 의료법인들에게 막대한 비용 부담을 안기면서 '감사비 폭탄 제도'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4일 부산의 한 의료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연매출 2000억원 규모인 이 병원의 외부감사 수수료는 지난해 900만원 수준이었으나, 올해 국세청이 지정한 서울의 대형 회계법인은 4000~5000만원을 요구했다. 이는 기존 대비 4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현행 제도는 공익법인이 4년간 자유롭게 감사인을 선임하면, 이후 2년은 국세청이 감사인을 지정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정 감사인의 대부분이 서울 소재 대형 회계법인에 편중되면서 지방 의료법인들은 예상치 못한 고통을 겪고 있다. 지방 법인들은 터무니없이 높은 수수료 외에도 교통비, 출장비, 인건비 등 추가 비용까지 떠안아야 하는 실정이다.
비용 문제뿐만 아니라 감사의 질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한 의료법인 관계자는 "지역 병원의 재정 구조나 공익사업 특성을 잘 모르는 서울 감사인이 서류 위주로만 검토하는 게 현실"이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심지어 연 매출 2조원이 넘는 서울 대형 병원들의 감사 수수료가 2000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방 법인들에 대한 수수료 요구가 터무니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정된 감사인을 거부하기도 어렵다. 지정 감사인 선임을 거부하거나 임의로 교체하면 '출연재산 및 수입금 합계액의 1만분의 7'에 해당하는 가산세가 부과되는 등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조다.
회계 전문가들은 제도 취지를 살리기 위해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회계학계에서는 "감사인 시장이 특정 대형 회계법인에 집중되는 것은 또 다른 불균형"이라며 감사인 풀(Pool)의 지역 단위 확대, 수수료 상한선 설정, 공익법인 규모에 따른 차등화된 기준 마련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한종합병원협회 관계자는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 확보라는 취지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감사인의 독립성만큼이나 피감기관의 현실적 부담을 고려한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제도 개선을 강력히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