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업계가 구조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업계는 얼마 전 국회 문턱을 넘은 석유화학특별법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회생 여력을 마련하려면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일 박성훈 의원(국민의힘·부산 북구을)과 한국화학산업협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석화업계 구조개편,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업계 주도의 석화 구조조정 현황과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는 최홍준 한국화학산업협회 대외협력본부장이 발제자로 나서 '석유화학산업 현황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제언'을 주제로 발표했다. 최 본부장은 중국과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전기료 부담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본부장은 "중국 대비 원료비·인건비·전기요금 등을 포괄한 원가 경쟁력에서 절대적인 차이가 난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납사 등을 수입하기 어려운 점은 외부 변수고 인건비는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전기료는 국가 차원에서 지원 가능한 부분"이라고 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급격히 상승해 올해 2분기 기준 석화산업 매출원가의 5.11%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타국과 비교했을 때도 올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한국이 KWh당 192원인 반면에 중국은 127원, 미국은 116원에 불과했다.
최 본부장은 특정 업종에 대한 전기요금 인하가 어려울 시에는 ▲산업위기지역으로 지정된 지역 대상으로 전력산업기반기금 면제 ▲전력직접구매제도 규제 완화 ▲사업장 전체 평균 피크량 기준으로 산정방식 개선 및 최대 수요전력 적용 기간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대비책을 마련해달라고도 제안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도 전기요금에 대해 아쉬움이 이어졌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가정용 전기요금은 3년간 그대로인 데 반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7차례에 걸쳐 70%가 올랐다"며 "어떤 물건이든지 도매가보다 소매가가 싸기 마련인데 기업이 대량 소비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비싼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 전기요금은 기업주가 부담하는 게 아니고 제품 원가에 반영돼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가 기업 경쟁력을 깎아 먹게 된다"고 했다.
오옥균 HD현대케미칼 부대표는 "증가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전력 수요를 심야 시간대로 분산해야 한다"며 "경부하 시간대의 요금 차등 효과를 최대부하 요금 대비 30~40%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경문 S-OIL 상무는 "주요 산업의 소재를 만다는 핵심 기간 산업인 만큼 전기료, 가스비 등의 혜택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석화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화학산업을 더럽고 위험한 산업으로 낙인찍고 있는 게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유럽연합의 화평법 REACH를 모티브로 한 국내 '화평법·화관법'을 비판했다. 이 교수는 "REACH의 목표는 국민 건강과 환경 보호뿐 아니라 화학산업계의 경쟁력 등도 중요한 목표"라며 "화학물질 위해성 정보를 환경부 금고에 넣어두는 국내 법은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지원과 환경규제 연동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용진 단국대 교수는 "석유화학산업을 단순히 퍼주는 게 아니라 환경 성과를 전제로 한 조건부 지원제도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며 "실제로 독일의 한 플라스틱 화합물 중소기업인 GRAFE는 화약 약품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는데, 정부와 이와 관련한 지원을 해준 게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석유화학을 위한 1조원 R&D를 조성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석유화학산업은) GDP 기여도는 높지만, 다른 주력산업에 비해 정부 R&D 투자 규모가 현저히 낮다"며 "석유화학 분야에 특화된 대형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 부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