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안전책임자'(CSO) 선임해도 CEO 기소

[머니S리포트-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개선 방안(2)] '경영책임자' 범위는? 모호한 법령에 사법부 갈팡질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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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지난해 1월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아파트 공사현장 붕괴에 이어 1년 4개월 만인 올 4월 또다시 인천광역시의 한 신축 아파트 주차장 일부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현장은 국내 대형건설업체들이 시공에 참여한 곳이어서 산업 안전관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안전조치 소홀로 산업현장의 인명 피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 1년 반째지만 기업들의 안전관리 능력 제고에도 사고 예방 실효성엔 기여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내년 5~50인 사업장으로 처벌 적용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앞으로 중대재해의 사전 관리방안이 새롭게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기사 게재 순서
(1) 산재 절반 '건설현장', 막을 수도 있었다… 공사 영상 기록 등 대책 부상
(2) '최고안전책임자'(CSO) 선임해도 CEO 기소
(3) 10년째 제자리 '산안비'… 건설업계 "요율 올려달라"

올 1분기 전국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근로자 수는 55명에 이른다.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되자 지난해 기업의 관리 책임을 무겁게 물을 법적 제재 장치가 마련됐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위반 여부를 조사,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1월27일 첫 선을 보인 이 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며 내년부턴 대상이 근로자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잡음은 여전하다. 법 조항 자체가 모호해 실제 사례에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중대재해 처벌 등의 관한 법률'에서 경영책임자의 법적 정의가 불분명해 다수의 건설업체가 혼란을 겪고 있다./사진=뉴시스


'무용지물' CSO… CEO급 의사 결정권 가져야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토록 한다. 경영 책임자의 법적 정의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과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통상적인 주식회사 등에서 상법상 사업(법인)의 대표권을 가지는 대표이사(CEO)로 해석하는 데에 큰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후자의 의미가 다소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를 통해 사업 또는 사업장 전반의 안전·보건에 관한 조직, 인력, 예산을 총괄 관리하고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형건설업체부터 최고안전책임자(CSO) 등으로 불리는 별도의 안전보건에 관한 최고 책임자를 선임함으로써 이 법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회사 입장에선 총수인 CEO가 기소되는 것보다 더 큰 리스크는 없기 때문이다.

CSO 선임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대책이었음이 드러났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34건 중 경영책임자는 모두 대표이사(CEO)로 CSO는 한 명도 없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현재까지의 사건들을 보면 CSO가 있더라도 대표이사를 의무이행주체로 보고 적극 수사하는 경향이 있고 사건에 따라 그룹 오너(회장)까지 책임범위를 확대되는 경우도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은 계열사인 삼표산업 양주사업장에서 발생한 채석장 붕괴 사고를 이유로 검찰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고 기소됐다. 정부는 CSO 선임보다는 실제 의사 결정을 누가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처벌 대상 결정의 핵심이란 입장이다.


대표이사 아래에 CSO가 있는 기업 구조상 CSO가 모든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중대재해대응본부 변호사는 "법은 '대표이사에 준하는' 경영책임자를 상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표이사가 아니면서 대표이사에 준하는 권한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안전보건뿐만 아니라 예산 등에 관한 권한 행사도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대표이사가 안전보건에 관한 권한을 위임했다면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로 보도록 변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합리적·충실히' 애매한 의무 규정에 속 타는 경영진


법 조항에 쓰인 단어의 해석이 불분명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로 하여금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정한다. 이때 합리적 실행 범위의 기준이 매우 포괄적이란 지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다룬 법원의 현안 보고서는 "모든 기업은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규모나 특성 등에 따른 각기 다른 유해·위험요인을 가지고 있고 인력·재정 사정 등도 다르므로 유해·위험요인을 통제하는 구체적 수단 방법을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려우며 기업 여건에 맞게 자율적인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건설업의 경우 사업장 규모나 근로자의 국적·나이·수, 도입 기술 종류 등 각 사업장마다 굴러가는 방식이 다른데 이를 전부 법령에 기재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 1년 6개월을 맞았으나 법령의 해석상 모호함이 문제로 제기되며 실제 기소 사례는 극히 적은 편으로 드러났다./사진=뉴시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에는 해석 여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모호한 표현이 여럿 있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시행령 제4조) '의무 이행에 필요한 조치를 할 것'(시행령 제5조)에서 '충실히'나 '필요한'이란 수식어의 범위가 과하게 넓고 명확하지 않아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 변호사는 "애초에 고위 경영진에게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기에 의무나 책임 부분에서 구체성이 다소 떨어지는 입법적 한계가 있다"며 "형사법인 만큼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따라 누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얼만큼의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6개 건설 관련 협회·조합으로 구성된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법 시행 전부터 "모호하고 막연한 규정은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입법 보완에 대해 정부에 꾸준히 건의해왔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CEO가 기소된 두성산업은 이 법이 헌법의 명확성 원칙 등을 위배했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기소냐 아니냐" 모호한 법령 탓 늘어지는 수사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소 자체가 오래 걸린다. 불명확한 법 조항을 근거로 경영 책임자를 특정하고 위반한 관리책임의무와 이에 대한 고의성까지 입증해야 해 수사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수사기관이 경영 책임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은 11건, 기소까지 기간은 평균 237일(약 8개월)이었다. 전국 1호인 두성산업 사건도 결심공판이 오는 9월로 미뤄진 상태다.

비판이 이어지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시행령 개정 로드맵을 발표, 위험성 평가를 개선하고 법 개정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TF가 지난 6월을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한 가운데 법 개정을 둘러싼 이렇다할 방향성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조재용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안전 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들의 책임과 업무 범위를 법에 명시한 뒤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을 하는 것이 중대재해법이 취해야 할 구조"라며 "지금처럼 구체적인 의무 규정 없이 일단 경영자부터 처벌하고 본다는 식으로 계속 해석된다면 법을 개정하거나 산업안전보건법에 흡수하라는 의견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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