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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4분쯤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일대에 포격전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북한은 선전포고도 없이 민간인 거주 구역을 포격하는 터무니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전 협정 이래 최초로 민간 거주 구역 포격으로 총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해자 중에는 민간인도 있어 전면전으로 이어질 뻔한 최악의 사태였다.
'지옥'이 된 섬… 주민 없이 기자만 남은 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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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사건 당일 국군의 포격 훈련을 핑계로 도발을 감행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불과 1.5㎞ 떨어진 연평도는 170여발의 포탄이 쏟아져 아수라장이 됐다. 주민들은 하늘에서 날아든 포탄에 무방비하게 노출됐고 긴급하게 대피했다.
우리 군은 훈련을 진행하던 K-9 자주곡사포를 즉시 소산시켰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포대를 이용해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 훈련 중 불발탄 문제로 장비를 재정비 중이던 4대를 제외한 모든 포대는 북한에 약 80발의 포격으로 응전했다. 이후 군 당국은 국지도발 최고 대비 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며 대응했다.
당시 국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추가 도발이 예상되므로 몇 배의 화력으로 응징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다시는 도발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전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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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가량의 포격전은 평화로운 어촌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비 오듯 쏟아진 포탄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단숨에 앗아갔다. 포탄으로 집과 창고는 날아갔고 사상자도 발생했다. 참전 용사였던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은 포탄 파편을 맞고 전사했고 주민 2명이 사망하는 등 총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평도 포격으로 대부분의 주민은 섬을 빠져나갔다. 불안해서 살 수 없다고 호소한 주민들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고향을 떠나 육지로 향했다. 이후 주민들은 1년이 넘도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다. 약 50여명의 주민만 남은 연평도는 '주민보다 기자가 많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