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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회사들이 자본 확충 수단으로 후순위채권, 신종자본증권 등 자본성증권 발행을 확대하면서 자본의 질적 저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콜옵션(조기 상환권) 행사 관행이 고착화되면서 자본 성격보다는 일종의 '만기 5년짜리 부채'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한국기업평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자본성증권 발행 규모는 21조7000억원으로 2019년(11조5000억원)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비은행 금융사(보험·증권 등)의 발행 규모는 13조5000억원으로 같은 해 은행과 금융지주(8조3000억원)를 훌쩍 넘어섰다. 올해 1분기에도 금융권의 자본성증권 발행은 8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자본성증권은 규제상 자본으로 인정되는 채무성 금융상품이다.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는 만큼 재무구조 개선 수단으로 각광받지만, 실제로는 콜옵션 행사 가능 시점(보통 발행 5년 후)을 '사실상 만기'로 보는 관행이 자리 잡으면서 자본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통상 후순위채는 10년 만기에 5년 콜옵션 조건, 신종자본증권은 영구 또는 30년 만기 조건에 5년 콜옵션이 붙는다. 투자자들은 발행 5년 후 금융사가 상환할 것이라 기대하고 자금을 넣지만, 금융사가 차환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다. 시장 금리 상승이나 회사별 경영 악화 등으로 차환 여건이 악화될 경우 자본 성격이 아닌 단기 부채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
최근 롯데손해보험이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를 연기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 같은 우려는 현실화됐다. 롯데손보는 당초 예정대로 조기 상환하겠다고 밝혔지만, 금융당국이 K-ICS(지급여력 비율) 150% 요건 미충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공모 채권에서 콜옵션 행사 지연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자본성증권 발행과 관련된 제도 및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콜옵션이 관례화된 현재 구조는 자칫 '캐피털 워싱(Capital Washing)', 즉 실질보다 겉보기에만 자본으로 보이게 만드는 왜곡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회사들의 자본성증권 의존은 일시적으로는 규제를 충족하는 유연한 방편일 수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자본의 질적 안정성 저해와 투자자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정현 한국기업평가 연구원도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조기 상환 가능성이 내재돼 있는 만큼, 경제적 실질로는 완전한 자기자본으로 보기 어렵다"며 "금융당국은 보통주 중심의 자본 확충을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