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보다 채소를 선호하는 채식시대가 열렸다.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선택하던 과거와 달리 기후환경변화에 대비하거나 개인의 도덕적인 신념에 따른 가치소비를 위해 채식주의자를 선언하는 사례가 나타난다. 관련시장도 커지며 새로운 경제를 창출하고 있다. 이에 <머니S>는 우리나라 채식시장의 현황을 살피면서 특별한 채소경제의 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베지노믹스가 뜬다-중] 채식 아닌 화장품·옷을 만드는 사람들


“고기를 끊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작심십일 만에 포기했습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흔치 않아 먹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믿고 살 수 있는 음식 재료 정보도 부족하고 희소성 때문인지 식대도 더 많이 듭니다.”


/사진=비비엘하우스
/사진=비비엘하우스
먹는 채식은 어렵다. 한번 길들인 식습관은 바꾸기 어려울 뿐 아니라 채식 전문 식당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채식주의자로 잘 알려진 가수 이효리도 채소, 과일만 먹는 비건이 아닌 달걀·우유 등 유제품과 해산물까지 먹는 세미베지테리언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최근엔 먹는 채식 대신 쓰는 채식을 선택하는 이가 늘고 있다. 고기는 먹되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옷을 구매하거나 동물성 원료를 넣지 않은 화장품을 사용해 동물과 환경을 살리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김희성 비비엘하우스 대표와 양윤아 비건타이거 대표는 ‘쓰는 채식’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직접 만들어 쓰는 ‘채식 화장품’


지난해 12월 서울시 종로구에 문을 연 비비엘하우스는 채식 화장품을 직접 만드는 곳이다. 식물성 유래성분들과 당귀, 삼백초, 감초 등 한방약재들을 블렌딩해 자신에게 맞는 DIY(Do It Yourself) 채식 화장품을 만들어낸다. 김 대표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사과정을 지켜보면서 먹고 바르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희성 대표/사진=비비엘하우스
김희성 대표/사진=비비엘하우스
“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음식도 공부하고, 텃밭을 가꾸며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매일매일 바르는 화장품에 대해 접근했죠. 우리 피부에 합성화학성분이나 동물성성분이 가득한 제품을 왜 발라야하는지, 제가 식물성 화장품을 직접 만들고 사용해보면서 많은 분이 채식 화장품을 바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약제로 운영되는 비비엘하우스는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이나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의 엄마, 몸에 합성화학성분을 줄여야 하는 암 환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최근엔 동물성 제품 이슈자체에 민감하거나 단순히 식물성 화장품이 좋아서 찾는 20~40대 여성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화장품은 저희가 필요한 피부에 가장 가까운 성분으로 유수분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에 지나지 않죠. 피부 스스로 자생력이 있고 그걸 도와주는 역할이 화장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시중 화장품은 기능과 역할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바르고 먹는 것이 기본에 충실해지면 피부는 달라지겠죠. 안에서 축적된 게 겉으로 보이는 것이 피부니까요.”

비비엘하우스에서 만들어진 화장품은 식물성 유래 성분들이 주를 이룬다. 산화방지제나 방부제 등은 일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기간이 짧다. 식품과 똑같이 3개월 냉장보관 하며 사용해야 한다. 비비엘하우스를 찾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채식화장품 DIY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김 대표는 조만간 채식 화장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바르는 것에 대한 작은 변화가 결국 환경을 바꾼다고 말한다.

클래스/사진=비비엘하우스
클래스/사진=비비엘하우스
“결국엔 지구라는 환경이거든요. 다음세대가 살아가야 할 터전인데 지금 사는 저희가 욕구를 위해 모든 리소스가 영원할 것처럼 흥청망청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채식, 비건에 대한 인식들이 개선되고 이런 움직임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이게 변화의 첫걸음이 될 테니까요.”
◆인조모피·재생섬유로 만든 패션

동물 가죽과 털, 실크 등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도 눈에 띈다. 패션브랜드 ‘비건타이거’는 동물학대에 반대해 인조 가죽, 인조 모피 등 대체 원단으로 의류를 제작해 판매한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던 양윤아 대표는 패션 쪽 경력을 살려 2015년 11월 비건타이거를 론칭했다.

“인조모피를 사용한 아우터, 식물성 재생섬유로 만든 트렌치코트가 대표적이에요. 이 옷을 선택했을 때 어떤 동물도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이 제가 만든 제품의 자부심이죠. 소비자들도 눈에 볼 수 있는 이익은 아니지만 동물보호에 일조 한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고요. 무엇보다 진짜 모피보다 관리도 쉽고 디자인도 다양해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죠.”

비건타이거 화보사진/사진=비건타이거
비건타이거 화보사진/사진=비건타이거
가수 선미, 치타 등 몇몇 연예인이 비건타이거 제품을 착용하면서 인기가 오르더니 론칭 후 2년 만에 매출액도 7배 이상 늘었다. 비건타이거는 2017년 10월 영국의 유명 잡지 ‘컬처 트립’(Culture Trip)에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비건 패션 브랜드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선정돼 소개되기도 했다.
“동물보호 만큼 디자인이나 트렌드에 집중하고 있어요. 실제로 비건 자체에 관심 없는 분들이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을 통해 저희 옷을 구매하고 나중에 브랜드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죠. 동물 학대 없이 생산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구매해야 되는 게 아니라 제품 퀄리티나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 어필하고 싶었어요.”

물론 비건 패션을 제작한다는 것에 어려움도 있다. 디자인에 따른 소재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 구상한 디자인에 소재가 맞지 않으면 소재를 찾다가 시즌이 지나가 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비건 소비는 어렵지만 사소한 습관이 계속될 때 우리 삶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죠. 비건을 괴롭고 어렵게 실천하는 것보다 즐겁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비건 소비가 작은 트렌드지만 쉬운 실천이 모였을 때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것이 결국 주류 트렌드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 본 기사는 <머니S> 제579호(2019년 2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