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는 1인당 80위안(1만4400원)이고요.”
“1년에 하루도 쉬지 않고 365일 개관합니다. 춘졔(春節, 중국의 가장 큰 명절인 설) 연휴기간에도 문을 엽니다…”
중국 광둥(廣東)성의 양장(陽江)시 남쪽에 있는 하이링다오(海陵島) 남쪽 해안, ‘광둥해상실크로드박물관’에 근무하는 안내원은 목소리는 아주 밝았다. 박물관 입장료 수입만 하루에 32만위안(5760만원), 연간으로는 1억1680만위안(210억2400만원)에 이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송(宋) 시대에 바다 비단길을 타고 해상무역을 하던 무역선, ‘난하이이하오(南海一號)’가 이곳에 보관돼 있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
![]() |
광둥해상실크로드박물관 전경
2009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광둥해상실크로드박물관이 문을 열기 전까지 양장시와 하이링다오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개혁개방의 선두주자인 광둥성의 성도(省都), 광저우(廣州)에서 광짠(광저우-짠장)고속도로를 타고 서남쪽으로 3시간 정도 달리면 210km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양장시. 양장시는 인구 240만명의 중소도시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는 240만명이면 대도시지만 1000만명 이상 도시가 10여개가 되는 중국에서 300만이 안되면 중소도시로 불린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양장시가 역사의 전면에 부상한 것은 1987년 8월. 중국 교통부 광저우 지부와 영국의 해양탐사회사는 양장시에서 동쪽으로 약 20해리(38km) 떨어진 바다 속에 침몰돼 있는 배 한척을 우연히 발견한 뒤부터다. 침몰된 배 일부에서 200여점의 송(宋)시대의 도자기가 나왔다. 고고학계에서는 이 배가 고대의 해상실크로드를 통해 무역하던 화물선으로 보고 ‘난하이1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상실크로드는 당(唐)의 수도 창안(長安)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페르시아와 유럽까지 연결돼 비단 무역을 하던 실크로드처럼, 저장(浙江)성의 닝보(寧波), 광둥성의 양장, 광시(廣西)장족자치구의 친저우(欽州) 등에서 뱃길로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해상무역하던 것을 가리킨다.
![]() |
수정궁 안에 보존돼 있는 난하이 1호. 컨테이너 박스 속에 보존돼 있다.
난하이1호가 발견됨으로써 해상실크로드의 존재가 한층 명확히 증명됐다. 게다가 800여년 동안 깊은 바다 속에 묻혀있었음에도 길이 30.4m, 폭 9.8m에 이르는 배 모습은 거의 파손되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돼 있었다. 중국은 난하이1호가 발견된 뒤 20년 동안 9차례에 걸쳐 수중 조사를 한 뒤 배를 원형 그대로 끌어올려 영구히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2007년 12월22일 오전11시. 30.4m×9.8m의 크기로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컸던 것으로 평가되는 배를, 거대한 컨테이너박스에 통째로 넣어 인양됐다. 인양에 동원된 기중기는 20여층 높이의 거대한 크레인. 그해 4월8일부터 200일여일 동안, 거세게 불어오는 태풍과 싸우면서 인양 준비를 한 노력 덕분으로 12월28일, 성공적으로 하이링다오의 광둥해상실크로드박물관의 수정궁(水晶宮)에 안전하게 입주했다.
수정궁은 2004년12월6일에 착공돼 2009년12월24일에 개관한 광둥해상실크로드박물관의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전시실. 난하이1호를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800여년 동안 묻혀있던 바다 밑의 해수(海水)를 끌어와 그곳의 온도를 맞춰 컨테이너박스 안에 들어있는 난하이1호를 보관하는 곳이다. 하루 4000여명이 이곳을 찾는 것은 바로 이 수정궁을 보기 위한 것.
![]() |
![]() |
송나라 동 송나라 반지
![]() |
![]() |
송나라 도자기 사라진 송나라 술병
박물관에는 수정궁 외에 난하이1호에서 나온 보물 6000여건이 전시돼 관람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송시대 장시(江西)성의 징더쩐(景德鎭)에서 만들어진 청백자의 은은한 색과 빛, 푸젠(福建)성 더화야오(德化窯)에서 구워진 물주전자 청백자, 저장(浙江)성 롱취안야오(龍泉窯)에서 만들어진 꽃무늬 청자, 용 무늬가 새겨진 금팔찌와 금반지, 송시대에 쓰여진 화폐인 동전, 길이 3.8cm 폭 1.7cm로 정교하게 조각된 휴대용 석조관음상, 구리 거울과 나무 빗 등등….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드는 보물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로 꼽히는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갈파했다.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의 사실(史實)을 확인하고, 지금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800년 동안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햇빛을 본 난하이1호와 수많은 송 시대의 유물들은 역사는 그냥 흘러가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작용하는 대화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광둥해상실크로드박물관 앞에 5km나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백사장. 그동안은 아주 일부 사람들만 휴가를 보내기 위해 찾았을 이곳이 난하이1호가 쉬고 있는 수정궁이 있음으로써 매출액 210억원의 경제원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아니 박물관 입장료만 210억원이고 관련효과까지 감안하면 훨씬 더 크다. 양장시 정부가 101㎢ 넓이의 하이링다오를 인구 10만명의 해양휴양지로 개발하고 있는 것도 ‘난하이1호와의 대화’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