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살면서 중국어를 배우다 보면 중국 사람들이 먹는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을 느낀다. 사람을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니 하오(你好)’라는 말과 함께 밥 먹었느냐는 뜻의 ‘츠판러마(吃飯了嗎)?’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어는 먹는다는 표현이 유난히 많다. 먹는다는 뜻의 동사인 츠(吃)를 붙여서 만든 말이 날마다 늘어난다. 힘들다는 것은 힘을 먹는 츠리(吃力)이고, 고생하는 것은 어려움을 먹는 츠쿠(吃苦)다. 손해 보는 것은 츠쿠이(吃虧)이며 본전을 까먹는 것은 츠라오번(吃老本)이다.

마음을 먹는 츠신(吃心)은 의심하다는 뜻이고, 놀라움을 먹는 츠찡(吃驚)은 놀라다는 말이다. 환영받는 것은 향기를 먹는 츠샹(吃香)이거나 츠더카이(吃得開)이고,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츠부카이(吃不開)다. 시험에서 빵점을 맞는 것은 오리 알을 먹는 츠야딴(吃鴨蛋)이고,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츠꽁푸(吃功夫)다.

빨간 신호등까지 '먹는' 중국


남보다 나은 대접을 받는 것은 조그만 부뚜막을 먹는 츠샤오짜오(吃小竈)이고 비슷한 대접을 받는 것은 큰 부뚜막을 먹는 츠따짜오(吃大竈)다. 일은 하지 않고 밥만 먹는 것은 츠바이판(吃白飯), 남의 성과를 가로채는 것은 다된 밥을 먹는다는 뜻의 츠시앤청판(吃現成飯), 게임에서 지는 것은 츠빠이장(吃敗仗)이다, 엄청나게 화를 내는 것은 총의 화약을 먹는 츠챵야오(吃槍藥), 누구나 똑같이 나누는 것은 큰 솥을 먹는 츠따궈판(吃大鍋飯),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관공서를 먹는 츠꽌쓰(吃官司)다.

문전박대 당하는 것은 츠삐먼껑(吃閉門羹)이고, 사장이나 상사에게 혼나는 것은 대열의 선두에 서는 것을 먹는 츠파이터우(吃排頭)이며, 이쪽 돈을 받으면서 저쪽을 위해 일하는 것은 츠리파와이(吃里爬外)다. 질투하는 것은 시큼한 식초를 먹는 츠추(吃醋)다.

먹는 것을 활용해 생활의 지혜를 나타내는 속담도 있다. 고생하고 좌절을 겪으면 지혜로워진다는 뜻은 ‘츠이치앤 장이즈(吃一塹 長一智)’, 행복한 생활을 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고생한 사람을 잊지 못한다는 말은 ‘츠수이뿌왕와징런(吃水不忘挖井人)’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먹는 대상도 늘어난다. 축구나 배구 경기에서 경고를 받는 옐로카드는 츠황파이(吃黃牌)고, 레드 카드를 받아 퇴장당하는 것은 츠홍파이(吃紅牌)다. 교차로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신호등을 먹는 츠홍떵(吃紅燈). 신호등마저 먹는데 그 어떤 것을 먹을 수 없겠는가. 땅 위에서 다리 네 개가 있는 것 가운데 탁자 빼고 다 먹고, 하늘을 날라 다니는 것 중에는 비행기 빼고 다 먹으며, 물 속에 있는 것 가운에서는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 이처럼 먹는 것과 관련된 말이 많은 것은 중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5000여년  동안 260여회의 농민 반란이 일어나 왕조가 바뀌었다. 한 왕조가 선 뒤 수십, 수백 년이 흐르면서 부패가 쌓이고, 자연 재해가 겹쳐 백성들이 먹고 살게 모자라고 배를 굶주리게 되면, 먹고 살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굶어 죽으나 반란군에 가담했다 잘못돼서 잡혀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이니, 성공하면 황제가 될 수 있는 농민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수없이 되풀이 됐다.

아주 옛날부터 ‘백성들은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민이스웨이톈(民以食爲天)’는 말이 쓰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서(漢書)』에 나오는 이 말은 한(漢)을 세운 류빵(劉邦)이 리스치가 건의한 ‘왕은 백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백성은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는 말을 받아들여 항위(項羽)를 물리치고 천하를 차지한 뒤부터 지도자는 백성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중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켜 ‘신중국’을 건국한 마오저둥(毛澤東) 주석이 신(神)처럼 추앙받는 것도 먹는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다. 마오 주석은 1950년대의 따위에찐(大躍進)운동과 1960~1970년대의 원화따거밍(文化大革命)이란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면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10억 명이 넘는 백성을 굶주림에서 해방시켰다는 공이 훨씬 크다고 여긴다.

마오 주석이 서거한 뒤 어렵게 정권을 잡아 개혁개방을 추진함으로써 중국을 세계 2대 경대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이 마오 주석보다 덜 평가받는 것도, 마오 주석은 없던 밥상을 만들어줬는데 덩 주석은 마오 주석이 차린 밥상에 반찬을 몇 개 더 얹은 것이라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중국이 ‘어떤 일이 있어도 경제성장률 8%는 유지한다’는 ‘빠오빠(保八)’를 강조하는 것도 먹는 것과 연결돼 있다. 성장률을 8% 이상으로 유지해야 해마다 600만 명 넘게 쏟아지는 대학교 졸업생들과 농촌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농민꽁(農民工)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성장률이 8%를 밑돌면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없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들이 불만세력이 돼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올해 성장률 목표를 7.5%로 제시하고 "양적 성장보다는 경제구조조정과 성장모델의 전환을 통한 질적 발전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중국 정부는 어떤 정책을 동원해서라도 올해 성장률을 8% 이상으로 유지할 것’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 2분기 성장률이 7%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전격적으로 인하했고,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그동안 보류했던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무더기로 승인하며, 작년 1월부터 강하게 추진하던 주택구입제한령이 곳곳에서 사실상 백지화되고 있는 것도 ‘민이스웨이톈’을 의식한 ‘빠오빠’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사람들이 식당에 가서 엄청나게 많이 주문하는 것도 먹는 것과 관련돼 있다. ‘먹다가 다 먹을 수 없으면 싸가지고 간다’는 ‘츠불리야오 또우저조우(吃不了 兜着走)’가 그것. 이유는 이렇다. 관청이나 회사에서 접대를 할 때 백지 수표와 비슷한 영수증을 한 장 들고 나간다. 이 영수증은 금액 제한이 없는 대신 횟수가 한번으로 제한된다. 그러니 식사와 함께 사우나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선호된다. 비싼 담배도 몇 갑씩 돌린다.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잔뜩 시켜 놓고 먹다 남으면 싸가지고 간다. 심할 경우엔 식당에서 먹는 것과 집으로 가져갈 것을 따로 주문해 함께 계산하기도 한다.

중국은 참으로 먹는 것을 통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츠원화(吃文化) 국가라고 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