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에는 재미있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말이 많다. '뚱시'(東西)도 그 중 하나다. 東西는 일반적 사물(thing)과 사람이나 동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샀다'고 할 때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뚱시다. 그런데 동쪽과 서쪽을 함께 가리키는 말도 뚱시다. 그럼 왜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난베이(南北)가 아니라 뚱시가 됐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다. 가장 보편적인 '일반설'은 이렇다. 중국 최고의 황제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받는 청나라 치앤룽(乾隆) 황제 때의 일이다. 치앤룽 황제가 어느 날 미복(사복)을 하고 한림서원(翰林書院)에 갔다. 조선의 집현전처럼 중국의 최고학자들이 한데 모여 연구하는 한림서원 학자들이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살펴보러 간 것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한림서원 학자들은 심심풀이로 돈내기 마작을 하고 있었다. 학자들은 황제가 오자 서둘러 마작패를 '버드나무 광주리'에 넣었다. 황제는 '법을 아는 학자들이 법을 어기면서 돈내기 마작을 하고 있으니 엄벌에 처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광주리 안에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때 한 노(老) 학자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뚱시(東西)"라고 대답했다. 치앤룽 황제는 이런 말을 처음 들어 "東西라고? 왜 南北은 안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학자는 "오행(五行)에서 동쪽은 감을목(甲乙木), 서쪽은 경신금(庚辛金), 남쪽은 병정화(丙丁火), 북쪽은 임계수(壬癸水)다. 남쪽은 불이어서 타기 쉽고, 북쪽은 물이어서 젖기 쉬워 광주리에 넣을 수 없다. 이는 아녀자와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東西로 부를 수 있지만 南北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치앤룽 황제는 '일리 있다'고 여겨 돈내기 도박을 한 학자들을 벌주는 대신 상을 내렸다. 또 東西라는 말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후부터 중국어 사전에 東西가 등재됐고, 일반적 사물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됐다.

하지만 뚱시는 치앤룽 황제 이전에도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의 저명한 유학자인 주시(朱熹)와 관련된 일화다. 주시가 휴대용 버드나무 바구니를 갖고 다니는 친구, 셩원허(盛溫和)를 만나 "바구니의 용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친구는 "東西를 넣는다"고 했다. 주시는 "南北은 넣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친구는 "東은 木에 속하고 西는 金이어서 東西는 바구니에 넣을 수 있지만, 南은 火, 北은 水인데 어떻게 바구니에 넣겠느냐?"고 반문했다.
 
왜 南北이 아니고 東西일까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동한시대에도 물건을 사는 것을 '마이뚱시'(買東西)라고 했다. 유래는 이렇다. 동한시대에 뤄양(洛陽)은 동쪽에 있는 서울이라는 뜻으로 '뚱징'(東京)이라 불렀고, 창안(長安, 현재의 西安)은 서쪽에 있는 서울이라고 해서 '시징(西京)'이라고 했다. 따라서 뚱징에서 물건을 사는 것을 '마이뚱'(買東)이라고 했고, 시징에서 물건을 사는 것을 '마이시'(買西)라고 했다. 이런 관행이 오래 지속되면서 뚱시는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東西는 木金이어서 입에 넣을 수 없다. 하지만 송원(宋元)시대부터는 '츠뚱시'(吃東西)라는 말이 쓰여 '음식을 먹는다'는 뜻으로 널리 이용됐다. 그럼 뚱시라는 말이 쓰이기 이전에는 어떤 말이 사용됐을까. 바로 '우스'(物事)다. 우리말로는 사물(事物)이지만 중국어로는 순서가 바뀌어 物事다.

東西 외에도 중국어에는 동(東)으로 시작하는 말이 매우 많다. 동서남북을 가리킬 때 맨 처음에 나오는 탓인지 뜻도 대부분 좋다.

황제의 대를 잇는 태자는 뚱꿍(東宮)이라 부르고, 상황이 유리한 것은 뚱펑(東風)이라고 한다. 뚱자(東家)는 주인이며 집주인은 팡뚱(房東), 주주는 구뚱(股東)이다. 옛날에 손님이 찾아오면 주인이 동쪽에 앉고 손님은 서쪽에 않게 해 대접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뚱따오(東道)는 주인 역할을 뜻하며, 손님을 초대한 주인은 뚱따오주(東道主), 주요 행사의 개최국은 뚱따오궈(東道國)다.
 
東자와 관련된 말은 또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우리 속담에 해당되는 말인 '뚱린시자오'(東鱗西爪)다. 여기서 인(鱗)과 조(爪)는 용(龍)의 비늘과 발톱을 가리킨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은 상상 속에서조차 전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용을 그릴 때 비늘과 발톱을 나눠 그리듯 단편적이며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뚱샨자이치(東山再起)이라는 말도 있다. 東山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이 말은 기회가 여의치 않아 물러섰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일을 도모한다는 뜻으로, '권토중래'와 비슷하다.
 
왜 南北이 아니고 東西일까

하지만 이 세상에 모두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는 법. 東으로 시작하는 말 가운데 부정적인 것도 있다. 분수를 모르고 남의 흉내를 내다 역효과를 보는 것을 '뚱스샤오핀'이라고 한다. 중국 4대 미녀 중 한명인 시스(西施)의 이웃에 살던 못생긴 뚱스(東施)가 몸이 아파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따라하다 더욱 추해졌다는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또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떠드는 것은 '뚱라시처', 카드 돌려 막기처럼 여기저기서 빌려 쓰는 것은 '뚱눠시졔'라고 한다. 정신을 놓고 여기저기 바라보는 것은 뚱장시왕이다. 아무리 말해도 귀담아 듣지 않는 우리말의 '마이동풍'은 '뚱펑추이마얼'(東風吹馬耳)이다.

뚱시(東西)와 팡뚱(房東) 등 글자만으로는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운 중국어를 많이 알기 위해선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은 나날이 중요해지는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