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독자는 기자의 기사를 읽고 편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의 메일내용은 뼈아팠다.
“기사는 전문적인 사람만 읽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좀 더 세심한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그는 기자가 쓴 글을 일반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풀이하며 “이렇게 써줘야 정확하게 기사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고 타박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의 말이 100% 옳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 ‘초등학생 독자도 이해할 수 있게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것. 전문용어가 많은 산업계를 맡다 보니 초등학생이 주 독자층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쉽게 써야 한다는 얘기다.
가끔은 어디까지 쉽게 풀어써야 할지 헷갈릴 때도 있다. 공간은 한정돼 있는데 용어설명을 하다보면 끝도 없이 기사가 늘어지기 때문. 그러나 이 역시 부덕의 소치임을 잘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이른바 ‘보그체’도 패션잡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보그체란 영어나 불어 등 외국어를 소리나는 대로 한글로 적은 글을 말한다. 이를테면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하며 락시크적인 믹스앤매치’ 등의 수식인데 패션잡지 <보그>를 모델로 이 같은 용어가 만들어졌다.
비단 패션업계뿐일까. 기자가 몸담은 산업계에도 이 같은 문체가 넘친다. ‘센테니얼홉을 사용해 비터하고 호피스러운 맛이 일품’(맥주광고)은 조금 과한 예이지만 베타버전(시험판), 스트리밍(바로재생), 유저(이용자) 등의 단어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기관과 업체 등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에도 종종 실수가 따른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지만 하루에도 수백통의 메일을 받다보면 시간에 쫓겨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내보낼 때도 있다. 예컨대 지난 4월에는 한 업체가 자사 제품을 광고하는 과정에서 성능이나 기술에 대해 거짓으로 ‘세계최초’, ‘세계최대’ 등의 표현을 써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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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바이라인(필자이름을 적은 행)은 책임이다. 수많은 직업 중 내 이름이 곧바로 소비자(독자)에게 알려지는 직업은 많지 않다. 기사에 달린 덧글에서 기자와 쓰레기가 합쳐진 ‘기레기’란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뼈아프게 들리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이다. 첫 바이라인을 달았을 때의 황홀함을 잊은 것은 아닌지. 기레기에서 기자로의 탈출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