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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시인(왼쪽부터), 한강 작가,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 겸 문학과지성사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에서 도서정가제 작가 토크에 나서고 있다.© 뉴스1 이기림 기자 |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도서정가제가 없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봤어요. 거의 모든 (동네)서점들이 도산하고, 인터넷서점에서는 일정 시기가 지난 책들이 많게는 60~7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됐죠.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느닷없이 할인이 많이 들어간 책이 올랐고요. (출판) 생태계가 붕괴된 거죠."
한강 작가는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열린 '도서정가제 작가 토크'에 나와 "출판사들은 신작을 내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독자들은 책이 싸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몸을 사리다보니 작가, 출판인들이 설 땅이 좁아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기존 규정을 정비해 독자들에게 최대 15%(가격할인은 10% 이내)의 할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한한 제도로, 2014년 11월부터 시행됐다. 3년마다 상황 변화에 따라 법안을 재정비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지난 수년간 민관 협의를 거쳐 가격할인을 최대 10%까지만 허용하는 등의 합의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할인율 등을 완화한 자체 검토안을 내놓으면서 갈등을 빚었다.
한강 작가는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된 이후 도입된 것이 현행 도서정가제"라며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정부에서 지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무가 자라듯이 사람들이 1인 출판사를 만들고, 책을 내고, 서점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났다"고 했다.
한 작가는 "시민의 자발성에 빚을 진 정부가, 자발성을 힘세게 밀고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씨앗들이 자라났지만 힘들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승자독식이 아닌, 작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체계로 갈 수 있게 제도 보완이 돼야 하고, 정책하는 분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준 시인도 참석해 도서정가제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박 시인 또한 현행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스로 출판문화산업은 왜 다른 산업과 달리 보호돼야 할까, 특혜라고 오해받을 만큼 보호돼야 할까 물었다"라며 "출판문화를 숲으로 생각하면, 숲 안에는 적자생존, 약육강식만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더라"라고 했다.
그는 "이 숲을 다른 도심과 연결한다? 다른 포식자들과 싸워서 이기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작동방식이 전혀 다른 생태계이기 때문에 숲은 숲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며 "안에서 경쟁하고,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경계가 도서정가제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 겸 문학과지성사 대표도 "숲을 보존하는 게 특권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도시생태계를 위해 보호하는 것처럼, 도서정가제는 전체 출판문화 생태계를 위해 보호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강 작가와 박준 시인은 도서정가제를 작가가 아닌 독자로서 접했을 때의 생각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강 작가는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주 소수"라며 "짧게 보면 출판사는 재고 처리할 수 있고, 독자들은 장바구니에 넣어놓은 책을 싼값에 살 수 있겠지만 출발선에 선 창작자들, 작은 플랫폼을 가진 사람들, 상업성 너머의 것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람들, 이를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 시인은 "1인 출판사, 신생출판사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책을 발굴하고, 원고를 매듭짓기 때문에 출판물 다양성에 크게 기여한다"며 "독자로서 이런 혜택을 받는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도서정가제가 개정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동네서점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박준 시인은 "동네서점에 가서 책을 살펴보고 고민하고 구매한 다음 성공했을 때 느끼는 쾌감, 실패할 때의 경험이 쌓이면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큰 것을 가진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동네서점이 문을 닫을 가능성이 커질 미래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한강 작가는 "서점이 많이 사라졌다가 현행 도서정가제 시행과 함께 많이 생겨났다"며 "불과 5~6년 됐는데, 지금 늘어나고 있는데, 이 기로만 넘기면 더 생겨날 수 있으니 완전 도서정가제를, 어렵다면 적립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면 동네서점들은 더욱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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