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기업에 ‘양손잡이 경영’이 떠오르고 있다. 최근 제약사들이 사업다각화에 나서면서다./사진=유한건강생활
국내 제약기업에 ‘양손잡이 경영’이 떠오르고 있다. 최근 제약사들이 사업다각화에 나서면서다./사진=유한건강생활

국내 제약기업에 ‘양손잡이 경영’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급격한 시장 변화에 살아남고 지속 성장하는 기업이 되려면 한 손으로는 기존 사업에 집중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미래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약사는 M&A(인수합병)·건강기능식품·화장품·의료기기 등 기존 사업의 확대와 함께 이종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의약품에만 한정됐던 매출구조를 다양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신사업 진출이라는 외형 확장에만 몰두하다간 기존 사업뿐 아니라 신사업까지 두 마리 토끼를 놓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나온다.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셈이다.

김지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제약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이 점차 늘면서 이익이 크게 훼손되는 부분이 있었다”며 “수익도 올리고 이익률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약기업의 신사업 진출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뚜렷한 목표’에 이은 사업 확대


올해 제약·바이오기업은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시기였다. 그 증거로 제약기업 간 M&A가 부쩍 늘어났다. 국내 제약기업의 대형 M&A 사례만 4건이다.

에이치엘비그룹은 생산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메디포럼제약을 인수했다. 에이치엘비의 항암신약후보물질 ‘리보세라닙’ 출시가 전망되는 상황에서 의약품을 생산할 기지가 따로 없었는데 이번 M&A를 통해 생산시설을 단번에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윈윈’으로 평가된다. 

셀트리온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종합 헬스케어 기업을 목표로 다국적 제약사 다케다제약을 인수했다. 그동안 바이오시밀러(복제약)에만 집중해오던 셀트리온이 본격적인 미래가치에 달려든 것이다. 업계에선 우스갯소리로 “오른손에는 바이오, 왼손에는 화학의약품을 무장한 완전체”라고 셀트리온을 표현한다. 

반면 바이오텍 비보존의 경우 계열사 루미마이크로를 통해 사업 확장에 나섰다. 루미마이크로는 이니스트바이오를 인수하고 조만간 합병을 통해 ‘비보존 헬스케어’라는 사명으로 새롭게 출발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뚜렷한 매출처가 없던 비보존이 이번 이니스트바이오로 인수로 향후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바이오텍은 매출을 일으키는 구조가 없어 연구개발비만 계속 나가는 상황”이라며 “M&A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 창출원을 확보해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생긴다”고 말했다.
./사진=김은옥 기자
./사진=김은옥 기자


전통제약사, 건기식으로 활로


최근 정부의 의약품 관련 산업 규제 강화와 제약기업 간 경쟁 심화로 매출 확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병원 방문이 줄면서 처방약 매출이 줄어들자 제약사는 캐시카우(CASH COW·수익 창출원) 확보에 총력인 모습이다. 구멍난 의약품 매출을 메우기 위해 제약사가 집중하고 있는 시장은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이다. 건기식 시장은 건강을 테마로 본업(의약품 제조·판매)과의 접점이 많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대웅제약은 건기식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올 상반기 대웅제약의 실적은 크게 악화됐다. 매출은 축소됐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실적악화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지만 경쟁사와 비교해 전통제약사로서 체면을 구긴 셈이다. 대웅제약의 선택은 건기식이었다. 대웅제약은 최근 비타민 제제 2종의 라인업을 추가하면서 건기식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또 대웅제약은 현대인의 생활습관과 증상별 맞춤 건기식 6종을 선보이면서 건기식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건기식 시장은 건강이라는 교집합으로 제약사의 구미를 당겼다. JW중외제약·GC녹십자·유한양행 등도 브랜드를 출시하며 건기식 사업을 확대했다.

특히 건기식을 전담하는 사업부문을 떼내며 전문성을 강화했다. JW중외제약은 건기식 사업부문을 JW생활건강으로 이전시켰다. 이후 JW생활건강은 건기식 통합브랜드인 ‘마이코드’를 선보이며 전문성을 강화했다. 유한양행으로부터 분사된 유한건강생활은 건강기능식품 사업에서 잭팟을 터트렸다. 대표 품목인 뉴오리진은 올 상반기만에 1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해 지난해 매출을 뛰어넘었다. GC녹십자는 건기식 브랜드 ‘건강한가’를 선보이고 프리바이오틱스 등으로 보폭을 넓혔다.

반면 이종사업에 진출해 쏠쏠한 수익을 올리는 기업도 있다. 국제약품이다. 국제약품은 국내 제약사 중 유일하게 생활용품인 마스크 사업에 진출했다. 이 결정이 ‘신의 한수’가 됐다. 코로나19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다. 올 상반기 국제약품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687억원으로 23%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73억원으로 84% 폭증했다. 

이외에도 국제약품은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및 전기판매업’이라는 신규 사업에 도전한다. 국제약품은 계열사인 효림산업을 통해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고 시험 운영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효림산업은 상하수도 및 폐수 처리 전문업체로 지난해 태양광 사업에 진출했다.

문어발식 신사업… 악수 될 수도


업계는 정체된 내수 환경 속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은 필수라는 입장이다. 제약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을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신사업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술 경쟁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어발식으로 신사업에 뛰어드는 것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본연의 가치를 살리지 못한 채 신사업에 진출할 경우 뚜렷한 성과를 장담할 수 없어서다.

정도진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제약기업이 가진 경쟁력은 R&D 능력”이라며 “기본적인 기업 경쟁력을 활용해 사업 다각화에 나서는 것은 이점이 크다”고 단언했다. 이어 “다만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업에 진출하려는 제약기업의 경우 우호적인 시각보다는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오로지 이윤만 추구하는 재무적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