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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공개된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 1호기. / 사진=뉴시스 박영태 기자 |
[주말 리뷰] 국내 유일의 항공엔진·부품 업체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가스터빈 엔진 사업을 고도화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과 기술제휴를 맺고 F-5 제공호 제트엔진 생산부터 KF-16 최종 조립과 T-50 계열 및 F-15K 엔진 생산까지 나서는 등 빠른 속도로 시장 입지를 키워왔다. 최근엔 한국형 전투기 KF-21의 엔진 국산화율을 39%로 끌어올리는 중추적 역할도 맡았다. 가스터빈 엔진 창정비로 출발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제 세계 항공기 엔진 시장에서 ‘기술자립’을 꿈꾼다.
40년 엔진 ‘한우물’, 한국산 전투기 심장 단다
단군 이래 최대 무기개발 프로젝트로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시제 1호기가 출고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13번째 자국산 전투기 개발국이자 8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K-21 보라매는 독자적 기술력이 집약된 ‘K-방산기술’의 결정체다. 특히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은 국내 유일의 항공기 엔진 제조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통합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40여년 동안 엔진 분야에서 묵묵히 기술 경쟁력 강화에 집중해 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뚝심으로 새로운 이정표를 새겼다는 평가다.
◆엔진 제조 뚝심으로 새 이정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979년 삼성테크윈 시절 가스터빈 엔진 창정비(오래 사용한 무기를 해체·수리해 완전 복구하는 것) 사업을 시작으로 항공기 엔진 개발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정비 개념 중 최상위이기 때문에 그만큼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사업 진출 불과 1년 만에 주력 전투기인 F4의 창정비를 완료하며 안정적인 기술력을 과시했다.
1980년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기술제휴를 맺고 J85 엔진의 조립생산 및 부품 국산화를 위한 기술도입을 추진해 1982년 국내 최초 초음속 전투기인 제공호(KF5)의 엔진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1984년부터는 롤스로이스와 함께 군수 엔진 정비사업 및 창정비 등을 진행하며 기술 고도화에 집중했고 1986년엔 KF-16 전투기 최종 조립업체로 선정됐다.
당시 KF-16에는 미국 P&W의 F100 엔진이 장착됐는데 P&W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엔진 기술이나 시험 등에 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27번에 걸친 정식시험을 거쳐 F100 엔진의 핵심 부품인 블레이드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하며 기술도약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F-15K 전투기와 T-50 고등훈련기 등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 항공기 엔진뿐 아니라 한국형 헬리콥터 개발사업(KHP)에 적극 참여해 한국형 헬기 ‘수리온’의 엔진을 생산하는 등 항공기 엔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족적을 남겼다.
2016년엔 한국의 노후 전투기를 대체하고 미래 전장 환경에 적합한 성능을 갖춘 전투기를 제작하는 KF-21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엔진 통합 개발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GE로부터 관련 기술을 이전받아 ‘직구매·조립국산화·부품국산화’의 3단계를 거쳐 국산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형 전투기의 엔진 부품이 국산화되면 다빈도 교체 부품의 공급체계가 안정화돼 전투력은 높이고 운용비는 절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국내 생산설비와 기술협력 인프라를 공군 전력화 사업에 지속적으로 활용해 한국 방산사업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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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스마트팩토리에서 로봇이 엔진부품의 표면을 정밀하게 다듬고 있다. /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
◆우주 시대 빛내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세계 3대 엔진 제작사(OEM)인 GE·P&W·롤스로이스의 핵심파트너다. 2015년 GE와 LEAP 엔진부품 장기 공급 계약, P&W와 엔진 국제공동개발(RSP) 사업 참여에 이어 2019년 롤스로이스와 대형 계약을 따내는 등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 배경에는 과감한 투자가 있다. 2016년 1000억원을 투자해 경남 창원에 엔진부품 신공장을 스마트팩토리로 구축했으며 2018년에는 베트남 하노이 인근 화락 하이테크단지에 현지 최초의 대규모 항공엔진 부품 공장을 지었다. 2019년에는 미국 항공엔진 부품 전문업체인 ‘이닥’(EDAC)을 3억달러(약 3570억원)에 인수한 뒤 한화에로스페이스 100% 자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USA’를 출범시켰다.
R&D(연구개발) 투자도 활발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에도 R&D 비용을 전년(4383억원)보다 240억원 이상 늘어난 4625억원으로 증액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목표는 우주로 향한다. 현재 우주 위성 사업에도 참여해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KSLV-2) 액체로켓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액체로켓 엔진은 짧은 연소 시간 동안 고온·고압·극저온 등 극한의 환경을 동시에 견뎌야 하기 때문에 연소안정화·내열 합금 기술·극저온 물질 취급 기술 등을 복합 적용해야 하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소수의 선진국만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로서 국가 사이의 기술 이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술 확보가 중요한 분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엔진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독자기술 액체로켓 엔진을 제작해 한국의 항공우주 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갈 방침이다. 올해 인공위성 전문업체 쎄트렉아이를 인수하며 경쟁력 기반을 강화했으며 사내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우주 관련 기술을 한데 모은 조직인 ‘스페이스 허브’도 출범했다.
스페이스 허브의 팀장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맡았다. 김 사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내이사이자 쎄트렉아이의 기타비상무이사이기도 하다. 김 사장은 스페이스 허브 출범 당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게 우주산업”이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개발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그 배경에는 과감한 투자가 있다. 2016년 1000억원을 투자해 경남 창원에 엔진부품 신공장을 스마트팩토리로 구축했으며 2018년에는 베트남 하노이 인근 화락 하이테크단지에 현지 최초의 대규모 항공엔진 부품 공장을 지었다. 2019년에는 미국 항공엔진 부품 전문업체인 ‘이닥’(EDAC)을 3억달러(약 3570억원)에 인수한 뒤 한화에로스페이스 100% 자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USA’를 출범시켰다.
R&D(연구개발) 투자도 활발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에도 R&D 비용을 전년(4383억원)보다 240억원 이상 늘어난 4625억원으로 증액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목표는 우주로 향한다. 현재 우주 위성 사업에도 참여해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KSLV-2) 액체로켓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액체로켓 엔진은 짧은 연소 시간 동안 고온·고압·극저온 등 극한의 환경을 동시에 견뎌야 하기 때문에 연소안정화·내열 합금 기술·극저온 물질 취급 기술 등을 복합 적용해야 하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소수의 선진국만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로서 국가 사이의 기술 이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술 확보가 중요한 분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엔진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독자기술 액체로켓 엔진을 제작해 한국의 항공우주 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갈 방침이다. 올해 인공위성 전문업체 쎄트렉아이를 인수하며 경쟁력 기반을 강화했으며 사내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우주 관련 기술을 한데 모은 조직인 ‘스페이스 허브’도 출범했다.
스페이스 허브의 팀장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맡았다. 김 사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내이사이자 쎄트렉아이의 기타비상무이사이기도 하다. 김 사장은 스페이스 허브 출범 당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게 우주산업”이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개발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이한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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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에서 작업자들이 엔진을 검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화에어로 |
신뢰 얻은 한화에어로 ‘이젠 국산화다’
전투기에서 조종사가 두뇌 구실을 한다면 엔진은 심장 역할을 한다. 심장이 약하면 머리가 좋아도 제대로 된 작전을 펼치기 어렵다. 가격 면에서도 엔진은 전체 전투기 가격의 15~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각종 전투기와 헬기에 장착되는 가스터빈 엔진 시장에 주력해온 국내 유일 회사다. 지금까지 9000대가 넘는 항공기와 헬기 등의 엔진을 생산했다. 최근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엔진 제작에도 뛰어들며 ‘K-엔진’ 도약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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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 /사진=한화에어로 |
◆‘면허생산’으로 기술·신뢰 쌓아
항공분야 시장분석기관 포케스트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세계 항공기 엔진 시장 점유율은 ▲CFM인터내셔널 40.925% ▲프랫앤드휘트니(P&W) 21.233% ▲제너럴일렉트릭(GE) 15.924% ▲롤스로이스 15.795% 등이다. CFM인터내셔널은 지분 50%를 소유한 GE의 계열사로 간주된다. 세계 항공기 엔진 시장은 GE·P&W·롤스로이드 등 3사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장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점유율은 아직 미미하다. 대신 이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RSP(비용과 위험을 분담하면서 이익을 공유하는 비즈니스 모델) 방식으로 시장 입지를 점차 넓히고 있다. RSP는 항공기 엔진의 개발·양산·관리까지 전체의 리스크와 이익을 참여 지분만큼 배분하는 계약방식이다.
엔진 제작 기업들은 엔진 창정비에서 출발해 조립생산과 면허생산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독자개발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게 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사의 엔진 사업이 면허생산 단계에 와 있다고 짚었다. 면허생산은 원청업체에 면허료를 지급하고 원청의 제품 기술·제조법 등을 이전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수출 권한도 협상에 따라 달라진다.
업계에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로 정밀 가공 등 기반 기술을 꾸준히 축적하며 글로벌 항공·엔진 생산 기업과 쌓아온 신뢰를 꼽는다. 회사는 수십년 동안 최첨단 항공기 엔진부품의 공급이나 면허생산 방식으로 GE·P&W·롤스로이스와 교류를 이어왔다. 그만큼 3대 항공기 엔진 제조사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KF-21 보라매 엔진 국산화율 39%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F-21 보라매 엔진 개발을 계기로 면허생산을 넘어 독자개발을 실현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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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전투기 KF-X 엔진 국산화 계획. |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GE로부터 관련 기술을 이전받아 KF-21 보라매 엔진 제작에 참여한다. GE에서 도입한 부품을 최종 조립하는 데 이어 회사가 제작한 국산화 부품으로도 엔진을 제작한다. KF-21 보라매 엔진의 국산화율은 39%다. KF-21 보라매 엔진 구매 비용만 4조원이 넘는다.
엔진 국산화는 제트기의 핵심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시장 지위 향상은 물론 항공장비의 해외 수출로 연결될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자체 기술력이 없으면 협상력도 떨어진다.
다만 엔진 기술 난이도가 높은 만큼 완전 국산화까진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항공기 엔진은 한치는커녕 1000분의1㎜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고도의 기술력과 40~50년의 정비 기간을 감안해 수십년 동안 안정적 공급능력을 갖춰야 해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GE·P&W·롤스로이스는 100년 이상 긴 기간 동안 국가 차원에서 거액의 자본을 투입해 기술 표준을 만든 곳들”이라며 “워낙 고도기술인 데다 국방력과 직결된 사안이어서 핵심 기술 공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엔진에 부품 수천개가 들어가는데 광물 비율·각도·온도·강도 등이 전투기마다 다르다”며 “경제성에 사업성까지 따지려면 갈 길이 멀지만 장기적으론 기술자립을 위해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원도 요구된다. 손명환 세한대 항공정비학과 교수는 “제트기 엔진은 신뢰성이 중요해 일본·독일·중국도 빅3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들의 엔진을 부착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입하려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4.5세대 제트기 등 고급 기종에 쓰일 엔진을 개발하려면 30년 이상 기술 축적이 필요하다”며 “국가 지원 없이 기업이 수십조원을 쏟아부으며 개발에 뛰어들 수 없는 만큼 자주국방 측면을 고려해 정부의 지원도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권가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