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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사건을 묘사한 삽화. (출처: Felix Schwormst?dt, 삽화(1914), http://austria-forum.org/af/Bilder_und_Videos/Historische_Bilder_IMAGNO/Sarajewo/00213549,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를 공식 방문하던 중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범인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였다. 19세기 후반 발칸 반도에서는 슬라브 민족들의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했다. 특히 세르비아는 슬라브 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에 반대하며 독립을 열망했다. 하지만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슬라브 민족들을 억압하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제국으로 병합하는 것을 지지했다.
프린치프와 그의 동료들은 '젊은 보스니아'라는 암살 조직을 결성해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암살을 계획했다. 그가 쏜 총은 페르디난트 대공의 머리와 임신 중이던 대공 부인의 복부를 관통했다.
프린치프는 체포됐고, 관련자들 입에서는 무기를 세르비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는 자백이 나왔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 정부에 최후통첩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반대하는 모든 단체의 해산, 관련자 처벌, 암살 사건 직접 조사 허용 등 엄격한 조치를 요구했다. 세르비아가 이에 답하지 않자, 오스트리아-헝가리는 7월 28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 선전포고는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세르비아 지원에 나서며 연합국을 형성했다. 이에 맞서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동맹군을 형성하고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이 밖에도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오스만제국과 불가리아는 동맹국에 가담했다.
1917년 중립을 지키던 미국이 연합국에 합류하면서 전쟁은 4년 만에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쟁으로 1700만 명이 사망하고 250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후 미국은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이 전쟁에 대한 반성으로 국제연맹도 창설됐다. 하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