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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점심 무렵인 오전 11시58분쯤 일본 간토 지방에서 진도 7.9 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명 관동대지진이다.
지진은 도쿄와 요코하마를 포함해 관동 6개현을 덮쳤다. 집이 부서지고 나무는 쓰러졌으며 도로는 내려앉았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던 탓에 불길이 번지며 화재도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약 14만2000명이 죽고 3만7000명이 실종됐다. 지진보다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실종자 14만명 가운데 건물 붕괴로 인한 압사자는 7500명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서 유언비어가 퍼지기도 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경찰과 자경단 등은 조선인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일본어가 서툰 이들은 죽창이나 칼로 찔러 죽였다. 총을 쏘고 불에 태우기도 했다. 해당 학살로 인한 정확한 희생자 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독립신문은 당시 조선인 희생자를 6661명으로 보도했다.
일본은 조선인 학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9월17일부터 10월1일까지 자경단을 체포했다. 이때 체포된 사람은 735명으로 이들 중 125명이 기소됐다. 실형을 받은 사람은 30명에 불과했지만 이마저도 1924년 1월 사면을 받아 모두 풀려났다.
관동대지진은 일본 현대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일으킨 지진이다. 인명 피해는 물론 경제적 피해도 컸다. 당시 피해 규모는 국민총생산(GDP)의 약 37%에 달했다. 이는 2011년에 있었던 동일본대지진(3%)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관동대지진은 일본 방재 정책의 전환점이 됐다. 지진이 발생하고 1년 뒤인 1924년 건축물법시행규칙의 구조물 강도 규정이 개정됐으며 지진력 관련 규정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정됐다. 현재 일본은 9월1일을 '방재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방재훈련과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