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로 중단됐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공급 계획이 재논의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신규 택지지구로 발표된 서울 서초구 원지동일대에 세워진 개발제한구역 안내문. /사진=뉴스1

서울의 주택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는 가운데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활용 논의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잇단 부동산대책에도 집값 오름세가 이어지자 실질적인 공급 기반을 넓혀야 한다는 위기감이 여권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정권 교체로 중단됐던 그린벨트 활용 계획이 정치권에서 재논의 선상에 오르며 수도권 택지 확보 전략이 새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연말 공개될 정부의 주택 공급대책에 수도권 그린벨트 조정 방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여당 일부 인사들이 공급 확대의 해법으로 그린벨트 활용을 언급하면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윤석열 정부에서 그린벨트 일부를 해제해 총 8만가구 규모의 신규 주택 공급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서울 서리풀·고양대곡 역세권·의왕 오전왕곡·의정부 용현 등 4개 지구의 그린벨트 해제가 이뤄져 약 5만가구 신규 택지가 마련됐다. 해당 택지들은 이미 공공택지 지정이 확정된 만큼 예정된 절차에 따라 단계별 사업이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는 올 상반기 나머지 3만가구 공급을 위한 추가 해제를 예고했지만 조기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며 정책은 재검토 단계로 전환됐다. 다만 현 정부 역시 이 같은 공급책을 완전히 접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수도권 주택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신규 택지 확보 수단으로서 그린벨트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로써 중단됐던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셋째 주(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50% 상승했다.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 등으로 지정한 10·15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첫 통계로, 상승률 0.50%는 해당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3년 1월 이후 역대 최고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도 이달 주택가격전망지수(CSI)는 122를 기록해 전월(112)보다 10포인트 올랐다. 2021년 10월(125) 이후 4년 만에 최고치이고 상승 폭 기준으로 2022년 4월(10포인트) 이후 3년 반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CSI가 100을 넘으면 1년 후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하락할 것으로 보는 사람보다 더 많다는 의미다.

강남·서초·송파·강서 등 유력 후보지

이재명 정부 들어 세 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집값 급등세가 이어져 실질 공급 방안이 필요하다는 위기감이 여권 내에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및 주택 단지. /사진=뉴스1

현재 서울에 남은 그린벨트는 전체 면적의 4분의 1(약 150㎢) 수준이다. 그린벨트 해제 시 유력 후보지는 강남구 세곡·자곡동, 수서차량기지 일대, 서초구 양재동 식유촌·송동마을, 송파구 방이·오금·마천동, 강서구 김포공항(공항동·방화동) 인근, 노원구 태릉골프장, 동작구-과천 경계 부지 등으로 알려졌다.

앞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날 국토부 주최 주민 간담회에서 "서울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린벨트 해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택시장 안정화 TF 단장을 맡은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도 최근 30만㎡ 미만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중앙정부로 이관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현행법상 수도권 소규모 그린벨트는 시·도지사에게 해제 권한이 위임돼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공식 당론으로 확대 해석되는 데 신중하고 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주택시장 안정화 TF가 출범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당의 입장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원칙적으로 맞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에서는 현재 착공·준공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양한 방안을 통해 매년 일정 수준 이상의 공급을 유지해야 집값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수도권 집값 상승을 억제하려면 공급 안정이 필수"라며 "서리풀지구와 의왕 왕곡지구 등은 수요가 확실해 공급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 시 수도권에 공급이 집중된다는 우려와 지역 특성상 문화재 발견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리스크도 예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