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최근 미국 백악관이 전격적인 대한항공 항공기 구매 소식을 알려 주목을 끌었지만 신규 계약은 아닌 것으로 밝혀져 아쉬움을 남긴다.

백악관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대한항공이 보잉 항공기 103대를 구매해 미국 내 13만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8월 워싱턴에서 체결한 양해각서(MOU)를 재확인한 수준"이라며 "신규 계약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발표는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나온 성과 발표의 일부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수백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수출 계약을 확보했다"고 밝히며 항공·에너지·조선 등 여러 분야의 협력 사례를 나열했다. 그 가운데 대한항공-보잉 간 항공기 구매 계약이 대표적 사례로 언급됐다.

백악관은 홈페이지의 팩트시트에서 "대한항공이 총 362억달러(약 50조원) 규모의 보잉 항공기 103대를 구매하기로 했다"며 "이 계약은 미국 항공산업 전반에 걸쳐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급망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별도로 제너럴일렉트릭(GE) 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137억달러(약 19조원) 규모의 엔진을 도입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한항공 "새로운 발주 아니라 기존 계약 확인"… 사고 기종인 '보잉 737-800'은 제외

지난 8월25일(현지시각) 워싱턴 윌러드 호텔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왼쪽부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스테파니 포프 보잉 최고 경영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은 "해당 내용은 지난 8월 워싱턴 현지에서 이미 체결한 양해각서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보잉사와 차세대 항공기 103대 구매 MOU를 맺었다. 구매 대상은 ▲보잉 777-9 20대 ▲787-10 25대 ▲737-10 50대 ▲777-8F 화물기 8대 등으로 2030년대까지 순차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번 발표는 백악관이 한·미 경제협력 성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8월 체결된 계약을 다시 언급한 것"이라며 "새로운 발주는 아니며 기존 계약 확인에 가깝다"고 말했다. 또 "103대를 한꺼번에 들여오는 게 아니라 노후 항공기를 순차적으로 퇴역시키면서 점진적으로 교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보잉기 도입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 기단 현대화 전략 중 하나이다. 신형 787·777 기종 중심으로 기단을 단순화해 운항 효율을 높이고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도 예상된다.

최근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유가족들이 사고기종 제작사 보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대한항공이 구매한 항공기 기종이 논란이 된 737-800 모델에 해당하는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렸다. 대한항공은 "사고 기종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최신형 모델인 737-10이 50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번 백악관 발표는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계기로 대미투자 성과를 부각하기 위한 재포장 성격이 짙다. 한미 양국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고 한국이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미국 측은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를 알리며 새로운 투자 유치로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체결된 계약을 일부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