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란으로 생산 중단한 한국GM. /사진=뉴스1 정진욱 기자
반도체 대란으로 생산 중단한 한국GM. /사진=뉴스1 정진욱 기자
국내 완성차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올 상반기 자동차업체들은 자동차용 반도체 등 일부 부품 부족 사태로 발생한 생산 차질을 만회하기 위해 하반기 많은 신차를 내놓으며 분위기를 반전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노조의 쟁의가 본격 시작될 분위기여서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게다가 수입차업체의 파상공세도 예고된 상태여서 국산차업계는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업체들은 올 하반기 완전변경과 부분변경 모델을 합해 신차 40여종 출시를 앞뒀다. 국내 완성차업계는 약 15종의 신차를 준비한 반면 수입차업체는 20여종 이상을 내놓을 예정이어서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치열한 접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와 한국수입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산차 점유율은 83.6%, 수입차는 16.4%로 나타났다. 2019년 국산차 87.4%, 수입차 12.6%와 비교하면 수입차시장의 가파른 성장세가 도드라졌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국산차업체가 지난해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한 만큼 이 같은 분위기가 올 상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제외한 3사의 내수 판매량은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 등 독일 브랜드 3사의 판매량을 합한 것보다 적었다. 한국지엠·르노삼성·쌍용차의 올 상반기 내수 판매량은 8만8625대로 독일 3사의 8만9229대에 미치지 못했다.

국산차업계 관계자는 “상반기 국내 업체는 반도체 부족과 노사 갈등으로 생산 차질을 겪었다”며 “하지만 수입차회사도 반도체 부족 사태로 생산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결국 제품 자체의 경쟁력과 공장의 생산 효율 등을 고려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파업 향해 가속페달 밟는 노조

각 업체별 세부 요구사항엔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전기차 등 미래차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회사 측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래픽=김민준 기자
각 업체별 세부 요구사항엔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전기차 등 미래차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회사 측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래픽=김민준 기자
이처럼 수입차업체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는 가운데 국내 완성차업계엔 파업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상황이다. 각 업체별 세부 요구사항엔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전기차 등 미래차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회사 측에게 요구하고 있다. 전기차 및 관련 부품의 직접 생산과 주요 신차 공정 배정, 정년 연장 등이 대표적인 사항이다.

한국지엠노조는 ▲월 기본급 9만9000원 정액 인상 ▲통상임금의 150% 성과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생계비 보전을 위한 격려금 400만원 ▲각종 수당 신설 및 인상 등이 담긴 ‘2021년 임금투쟁 요구안’을 확정하고 사측과 지난 5월부터 9차례 교섭을 진행했다. 이 요구안이 수용되면 1인당 1000만원 규모의 혜택을 받게 된다. 부평공장에 신차 생산 배정도 요구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올 상반기 내수 3만3160대와 수출 12만1623대 등 총 15만4783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6.8% 감소한 상황이다. 그나마 지난 6월 수출이 2만1136대로 전년동기대비 27.1% 증가한 것이 위안거리로 꼽힌다.


한국지엠노조가 쟁의 행위를 예고한 가운데 지난 7일 현대자동차노조도 총투표를 실시했고 찬성, 가결됐다. 지난 6월30일 사측과의 임단협 결렬에 따라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현대차 사측도 노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차노조는 지난 13차 교섭에서 사측이 내놓은 ▲기본급 5만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성과금 100%+300만원 ▲품질향상격려금 200만원 ▲2021년 특별주간 2연속교대 10만포인트 등 제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기본급 9만9000원 인상(정기호봉 승급분 제외) ▲당기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정년연장(최장 만 64세) ▲전기차 생산에 따른 일자리 유지 등 당초 임단협 요구안을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아노조도 현대차노조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차노조는 “13차례 교섭에도 사측과 이견을 좁히지 못해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노동3권에 보장된 쟁의 행위에 돌입키로 했다. 쟁의 행위는 노동자의 합법적 권리인 만큼 왜곡된 시선을 거둬달라”면서도 “조합원이 납득할 만한 안을 갖고 교섭을 요청하면 언제든 임하겠다”고 전했다.

현대차 측은 노조의 입장을 무조건 수용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사무직 노조가 설립됐고 이들은 기존 노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대표노조가 아니어서 교섭권은 없지만 회사가 이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르노삼성자동차는 XM3(수출명 아르카나) 수출 호조에 숨통이 트였지만 지난해 임단협을 여태 마무리 짓지 못했다. 르노삼성에는 ▲기업노조(1768명) ▲민주노총 금속노조 르노삼성차지회(39명) ▲새미래노조(제3노조·129명) ▲영업서비스노조(제4노조·26명) 등 4개의 노조가 있으며 지난해부터 기업노조가 대표노조로서 사측과 협상해왔다.
지난달 26일 열린 현대자동차 올해 임단협 상견례. /사진= 뉴스1 윤일지 기자
지난달 26일 열린 현대자동차 올해 임단협 상견례. /사진= 뉴스1 윤일지 기자

그럼에도 사측과 제대로 된 교섭조차 이어가지 못했고 무리한 파업으로 빈축을 샀다. 르노삼성노조는 지난 4월 전면 파업에 돌입했고 사측은 부분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에 새미래노조와 영업서비스노조가 지난 5월29일 재교섭을 요청하며 기존 대표노조의 쟁의행위가 중단되고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진행했다. 대표노조로 결정된 날로부터 1년이 지난 이후엔 어느 노조라도 교섭요청을 하면 사용자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 대표노조는 쟁의 행위를 중단해야 해서다.
하지만 기존 대표노조인 기업노조가 다시 교섭대표로 확정되면서 하반기에도 상황이 나아지리란 보장이 없다. 특히 지도부가 지난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된 민주노총 가입 추진을 재검토하고 있어 논란이다.

하반기 생산량 줄어들면 ‘최악’

자동차업계에서는 해외 판매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파업을 시작하면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내수에서는 수입차업체의 점유율 확대 움직임에 대응해야 하고 판매 호조를 보이는 해외에서는 물량 부족을 겪을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국산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30%쯤 적기 때문에 노조가 일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과도한 요구를 하는 셈”이라며 “글로벌 완성차업체 외에도 각국의 다양한 스타트업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파업으로 생산 차질을 겪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