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인 수치만 나아진 것이지 현장은 여전히 경색돼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기자본비율 상향마저 시행되면 사업할 수 있는 업체는 거의 남지 않게 될 것이다." - 건설업계 관계자 A씨
2021년 시작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PF 부실 사태가 확산되며 금융당국 주도로 사업성 낮은 사업장들의 구조조정이 진행, 건전성 지표는 개선됐으나 시장에서 퇴출된 곳도 많아졌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신규 부동산PF 취급액은 전년동기(16조4000억원) 대비 4조2000억원 증가한 20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신규 자금 공급이 활발해졌다는 의미다.
PF 연체율은 대출 잔액 감소에도 전분기(4.4%)보다 0.2%포인트(p) 하락한 4.2% 수준을 보였다. 건전성이 개선된 모습이다. 반면 중소금융회사(저축·여신전문·상호금융)의 토지담보대출 연체율은 32.4% 수준으로 전년동기(18.6%) 대비 13.9%p 치솟았다.
토담대는 토지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자기자본이 적은 중소·중견업체들이 주로 활용한다. 토담대로 사업 초기 자본을 마련한 뒤 브리지론과 본PF로 전환해 토담대를 상환하는 구조다. 다음 단계 자금 조달이 막히면 가장 먼저 흔들리게 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PF 부실 사태가 장기화되고 금융권의 대출 심사가 더욱 까다로워졌다"며 "최근 서울 중심의 PF사업 대출 신청도 거절당할 만큼 자금 흐름은 막힌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PF 건전성이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가 수치로 나타났지만 업계는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신용등급이 높고 재무건전성이 우수한 대형 건설업체들을 중심으로 자금조달이 활성화돼 평균을 올렸다는 분석이다. 서광채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체 PF사업의 건전성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며 "토담대 연체율은 높아졌고 대형과 중소·중견 건설업체 간의 자금 조달 차이가 더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금리가 하향 사이클에 접어들고 시중 유동성이 늘어 PF 건전성 지표는 개선됐지만 이는 부실 사업장이 정리되고 대형사의 자금 조달 여건이 나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자본비율 단계별로 20% 상향… 업계 "대형사들만 남을 것"
금융당국은 부동산PF 건전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자기자본비율을 단계별로 상향할 계획이다. 2027년부터 4년에 걸쳐 5%부터 20%까지 올린다는 방침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현재 국내 부동산PF의 자기자본비율은 평균 3% 수준이다. 이는 선진국 평균(30%)의 10분의 1 수준이다.
업계는 현 상황에서 자기자본비율 상향이 이뤄지면, 대형 개발업체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업계 관계자 B씨는 "부동산PF 정상화를 위해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야 하는 방향성에 공감한다"면서 "다만 보완책 없이 20%까지 올리는 건 많은 중소·중견업체들의 문을 닫게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자기자본비율 상향은 업계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박 위원은 "건전성 강화를 위해 자기자본비율 상향이 필요하지만 규모 있는 개발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사업 리스크가 커지면서 지방보다 안전한 수도권으로 쏠리는 현상과 부동산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단기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 교수는 "PF 건전성 강화를 위해 안전한 사업장과 기업을 위주로 사업이 시행돼 공급의 질이 올라가는 반면 단기 공급은 위축될 것"이라며 "정책 실행을 위해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