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 광고는 TV를 통해 하루에도 몇번씩 접하는데 경고문구 같은 건 본 기억이 없네요."

"광고 자체는 화려한데 비해 경고문구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제작해 의식하지 않는 이상 찾아보기 힘듭니다."

"화면 하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업체 PR문구 사이에 끼워 넣어 잠깐 보여주고 마는 식이니 그걸 눈여겨볼 사람이 없죠."

대부업체가 광고를 제작할 때 의무적으로 넣어야 하는 경고문구를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처리해 문제가 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1년 11월 대부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과도한 빚은 큰 불행을 안겨줄 수 있다' 등의 경고 문구를 해당광고 최대글자의 3분의 1 이상의 크기, 광고 5분의 1 이상의 노출시간으로 삽입해 대부업 대출의 위험성을 알릴 것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대부업체들은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경고문구가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교묘하게 광고를 제작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눈을 씻고 봐야' 보이는 대부업 꼼수광고

◆ 대출 경고문구, 대체 어디에?

국내 1위 대부업체 러시앤캐시의 TV광고를 살펴보면 누구나 무상담으로 3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자극적인 문구를 화면 좌측에 선명한 글씨로 장시간 배치한 반면, 경고문구는 화면상단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하얀색 작은 글씨로 3초 동안 내보낸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업을 PR하는 문구들 사이에 잠깐 동안 '끼워 넣기' 식으로 제작돼 있어 경고문구를 기업 PR문구로 오해하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다른 대부업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즈사랑의 광고는 인기 방송인 브로닌이 출연해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은 가운데 주부의 무담보 300만원 대출을 두고 남성 패널과 여성 패널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이 가운데 점점 격앙되는 두 패널의 모습이 교차 편집되고 시청자들의 시선이 쏠린 사이 화면 하단에 흰색 깨알만한 크기의 경고문구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에 따라 일부 소비자 사이에선 "경고문구 삽입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대부업에 대한 정확한 지식 없이 TV를 통해 접하는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대출에 손을 댔다가 최고 연이율 34.9%의 고금리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 이들에게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경고문구는 전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한 금융소비자는 "경고문구를 누구의 눈에나 띌 수 있도록 선명하게 배치해 대부업체를 이용할 잠재고객에게 대부업 대출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도 기존 규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규제강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앞으로도 대부업체가 이런 식의 꼼수를 부린다면 활자 크기와 색깔, 표기 위치까지 더 상세하게 규제해 꼼수를 부릴 여지를 원천 차단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대부업체, TV광고로 '친근·공감' 이미지 세탁

최근에는 대부업체가 친근·공감을 콘셉트로 하는 TV광고를 통해 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소비자단체들은 최고 연 34.9%의 고금리를 배제한 채 친근한 이미지를 쌓는 것은 마구잡이 대출을 조장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지난 1월2일부터 2월7일까지 대부업체 이용경험이 있거나 이용 중인 3249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및 무기명 설문을 실시한 결과 지난해에 비해 20~30대 이용자 수가 5% 줄고 40~50대 이용자가 8%가량 늘었다.

대부업 이용자의 학력별 현황은 고졸 이하가 1728명(5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졸자 1338명(43%), 대학원 이상 70명(2%) 순이었다. 고졸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부터 54∼57% 수준이다.

문제는 친서민적인 대부업체 광고를 통해 고금리에 대한 별다른 경각심 없이 대출을 받는 금융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학영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러시앤캐시의 경우 지난해 1∼10월에 무려 12만2188번의 광고를 내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402차례의 광고를 쏟아내고 있는 셈.

김준하 희망살림금융소외대책팀장은 "대부업체 광고가 언제든지 돈을 쉽게 빌리고 또 쉽게 갚을 수 있을 것 같은 잘못된 인식을 조장한다"며 "대부업체의 TV광고를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부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외부 심의위원으로 구성된 광고심의위원회를 통해 부적절한 광고내용은 자체적으로 걸러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 대부업체 광고, 서울시내 버스·지하철에서 퇴출

서울시내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제3금융권인 대부업 광고를 볼 수 없다.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지난 2월 대부업 광고물을 금지광고물에 포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광고관리규정을 개정했다.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도 지난 1월 광고물관리심의원회를 설치하고 운영내규를 개정해 대부업 광고 금지를 명문화했다. 현재 두 지하철 운영기관 내에서는 대부업 관련 광고를 찾아볼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버스도 지난 1월부터 대부업 광고가 금지됐다. 서울시가 '버스의 대부업 등 광고규제 개선방안'을 마련해 버스운송사업조합이 시행 중이기 때문이다.

대부업 광고를 규제하려는 법 개정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부좌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대부업체 방송광고에 최고이자율과 연체이자율, 이자 외 추가비용에 관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명시토록 하는 '대부업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