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젊은 줄 알고 일을 까다롭게 찾았어요. 나이가 들면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눈을 낮췄죠.”

1년여의 구직기간 동안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는 박진만씨(61). 그는 집에서 소파에 앉아 자식들에게 인사만 건네는 생활이 그저 미안하다고 말한다. 70세까지 적은 돈이라도 벌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박씨는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씁쓸해 했다.


◆예상보다 길어진 구직기간

박씨는 은퇴 후 6개월 동안은 더 편하고 연봉이 높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아직 일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니 좋은 일터를 찾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는 “일산 서구·동구, 서울 은평·마포구 등 여러 구청에 일자리 알선을 알아봤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박씨에게 들어오는 일자리는 경비직과 유료주차장 관리직, 청소부 등이 전부였다. 박씨는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다”며 “하지만 당시에는 마음에 차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용업체가 제시하는 월급은 120만~130만원선. 노인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기관에서는 박씨가 젊은 축에 속해 이 급여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박씨는 ‘골라서’ 이력서를 넣었다. 이력서에 희망하는 월급여를 기재했고 그간의 경력을 서술해 좀 더 나은 일자리에 지원했다. 그러나 연락이 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박씨의 구직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6개월이면 충분히 일자리를 구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내에게도 6개월만 쉰다는 생각으로 구직하겠다고 했는데 365일이 넘어가니까 집에서도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박진만씨. /사진=진현진 기자
박진만씨. /사진=진현진 기자

◆수십년 일했지만 쉬는 1년 ‘눈치’


구직기간이 길어지자 그간 빚을 갚느라 고생했던 아내와 아직 취직하지 못한 자식들을 볼 낯이 없어졌다. 박씨는 “수십년을 일했지만 쉬는 1년이 굉장히 힘들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박씨는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소규모 사업자로 활약했다. 근처 학교에 액자 등을 만들어 납품했는데 생각보다 박씨를 찾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더 큰 목표달성을 눈앞에 두고 일이 틀어지면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해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박씨가 한 일은 국토교통부 소속 과적단속위원. 안정적이었지만 인테리어사업으로 떠안은 빚을 감당하기엔 월급이 부족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었고 박씨는 과적단속위원을 하면서 동시에 부업으로 소량의 액자를 납품해 살림에 보탰다. 공장이 없어 빈 공터에서 액자를 제작했고 겨우겨우 수량을 맞췄다. 박씨는 “빚을 갚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며 “차근차근 사업을 키워 빚을 갚을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다시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고 박씨는 인테리어사업에서 손을 뗐다. 빚만 떠안은 박씨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던 중 수목원 매점에 입찰해 낙찰받았다. 박씨는 “수목원 매점운영에 뛰어든 초기에는 과적단속위원도 그만둔 상태여서 식생활이 궁핍할 정도였다”며 “3년간 뼈가 부스러질 정도로 수목원 매점을 운영해 겨우 빚을 청산했다”고 회상했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현실


박씨는 수목원 매점운영으로 생애 최고의 돈을 벌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일자리가 견디기 힘들었다. 박씨는 “소규모로 사업도 하고 큰돈도 만졌는데 한달에 110만원 받는 일에 만족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씨가 말한 일은 바로 유료주차장 관리직. 그는 지난 6월 더 이상 집에만 있을 수 없어 일을 시작했지만 한달 만에 그만뒀다. 이틀간 22시간 일하는데 첫째날은 14시간, 다음날은 8시간을 근무하고 하루를 쉰다. 근무강도가 셌지만 한달 월급이 150만원이라는 제안에 수락했다. 그러나 박씨가 실제로 받은 월 급여는 110만원에 불과했다. 그는 “최저임금도 안 주는 일이 많다”며 “이마저도 구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늙은이가 주말에 쉬는 것은 호사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60~70세를 대상으로 한 취업알선은 5만7000건이지만 취업은 2만7000여건이다. 절반 정도만 취업에 성공했다. 박씨 역시 여러 차례 센터를 통해 알선받고 면접까지 봤지만 최종적으로 연락받지 못한 곳이 많다.


그간 월급과 근무조건을 따지며 일자리를 골랐던 박씨지만 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과거의 자존심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을 바라보게 된 것. 박씨는 “을의 자세로 있어야 늙어서도 일할 수 있다”며 “겸손한 자세로 70세까지는 일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박씨는 “계속 일하는 게 자식들에게도 교육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적은 보수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식이 힘든 현실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 아내가 ‘철들자, 환갑에는’이라며 ‘박철환’이라고 불러요. 현실을 직시하면서 바뀐 제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죠. 제 꿈은 하나입니다. 계속 일하고 싶어요. 정규직으로 일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지와 에너지 하나는 청년에 뒤지지 않아요.”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