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련형 전자담배 증세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이코스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개장도 하기 전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뉴스1 DB
궐련형 전자담배 증세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이코스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개장도 하기 전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뉴스1 DB
정부와 국회의 오락가락하는 담뱃세정책이 시장 참여자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건강증진을 명분으로 내건 일반담배(궐련) 증세는 사실상의 서민증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 조세형평성을 명분으로 궐련형 전자담배 증세 카드를 흔들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담뱃세 조정의 키를 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위원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며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 불만이 커지는 모양새다.
◆'실패한 담뱃값 인상' 후폭풍

담뱃세와 관련한 쟁점은 크게 일반담배 가격인하와 궐련형 전자담배 증세 두가지다. 우선 일반담배 가격인하는 박근혜정부 시절 집권여당으로 담뱃값 2000원 인상을 주도한 자유한국당이 다시 총대를 멨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은 소속의원 10명과 함께 지난 7월26일 담뱃값을 2000원 인하하고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해 인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증진법·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흡연율 감소가 목적이었던 담뱃값 인상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세수만 늘렸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책임을 지고 다시 가격을 내리는 안을 제시한 것이다. 담뱃값 인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대선 당시 공약이기도 하다.  

담뱃값 인상 초기 일시적으로 줄었던 판매량은 곧바로 증가세로 돌아섰고 담배세수는 2014년 6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12조4000억원으로 5조5000억원 늘었다. 이에 따라 흡연자 사이에서도 실패로 끝난 담뱃세 인상을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최대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의 이연익 대표는 “담뱃세 인상은 서민부담을 가중시키고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 실패한 정책임이 드러났다”며 “지난 정부의 담뱃세 인상정책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새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독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행을 위한 천문학적 재원(178조원)을 확보하려면 정부와 여당은 한푼이라도 세금을 더 걷어야 할 처지라 담뱃값 인하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여당은 “자유한국당이 이제 와서 담뱃세를 내리자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국민의 생활과 민감한 문제인 세금 관련 논의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담뱃값 인하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위쪽부터)한국필립모리스 아이코스와 전용궐련 히츠, BAT코리아 글로와 전용궐련 네오스틱. /사진제공=각 사
(위쪽부터)한국필립모리스 아이코스와 전용궐련 히츠, BAT코리아 글로와 전용궐련 네오스틱. /사진제공=각 사

◆궐련형 전자담배 증세 ‘갑론을박’
궐련형 전자담배 증세도 자유한국당이 불을 지폈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6월16일 한갑(20개비)당 126원인 궐련형 전자담배의 개별소비세를 일반담배와 같은 수준인 594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별소비세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의 법안은 지난달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조정소위원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통상 여야 합의로 소위를 통과할 경우 전체회의에서도 무사 통과되는 게 관례여서 궐련형 전자담배 개별소비세 인상이 유력했다.

그러나 다음날 조경태 기재위원장(자유한국당)은 “해외에서는 궐련형 전자담배 세율이 일반담배의 50% 이하 수준인데 우리만 100%로 동일하면 국민부담이 늘어날 수 있으므로 여러 상황을 감안해 합리적 안을 제시해 달라”며 제동을 걸었다.

이 법안은 지난달 28일 열린 기재위 전체회의에서도 다시 논의됐지만 야당 내에서 의견이 엇갈리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증세론자들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담배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제품이어서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론자와 신중론자는 다른 나라의 기준과 유해성이 덜하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담배업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담배도 종류에 따라 타르와 니코틴 함량이 달라 유해성이 제각각이지만 동일한 세율이 적용되고 있다”며 “유해성 정도는 세율을 정하는 요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를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한 한국필립모리스(아이코스)는 국회의 증세 논의가 가격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아이코스가 출시된 전세계 25개국 중 어디에서도 궐련(일반담배)과 동일한 세율을 적용한 사례는 없다”며 “2015년 담뱃세 인상의 목적이 증세가 아닌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 덜 해로운 담배제품에 대한 증세는 소비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개별소비세 중과세에 이어 정부와 국회의 계획대로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의 증세가 이뤄진다면 제조원가 및 40%의 수입관세 부담 등에 따라 소비자 판매가 인상 없이는 아이코스사업을 유지하기 힘들다”며 가격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달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를 출시한 BAT코리아도 유사한 입장이다. BAT코리아 관계자는 “세율은 국회가 결정하는 것이지만 소비자에게 덜 해로운 궐련형 전자담배 세금을 일반담배와 같은 수준으로 인상하기로 한 것은 유감”이라며 “개별소비세 인상이 최종 확정되면 글로 전용궐련의 가격인상을 심각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산 궐련형 전자담배(가칭 ‘릴’) 출시를 준비 중인 KT&G는 국회의 증세 논의가 지연됨에 따라 출시 시기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KT&G 관계자는 “과세기준이 정립된 후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할 계획”이라며 “일단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국회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일반담배에서 궐련형 전자담배로 갈아탄 소비자들이 궐련형 전자담배 스틱 사재기에 나서 판매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세븐일레븐과 미니스톱 등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아이코스 전용궐련 ‘히츠’의 매출은 증세 논의 사실이 알려진 후 30~60% 증가했다.

소비자 일각에선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명분과 동떨어진 증세 추진에 불만의 목소리가 팽배하다. 흡연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궐련형 전자담배 증세 반대는 물론 일반담배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글을 쏟아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의 담뱃세 조정 논의는 이해관계자의 입장차가 커 당분간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4호(2017년 9월6~1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