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서울 소공지하도상가에서 열린 제로페이 가맹신청서 전달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지난달 22일 서울 소공지하도상가에서 열린 제로페이 가맹신청서 전달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정부, ‘밴리스’ 외쳤지만
밴사에 참여 거듭 요청
참여해도 안 해도 문제
‘졸속 사업’ 비판 불가피
20일 제로페이 시범도입
가맹점 1만6000곳 불과

서울시와 정부가 지급결제 과정에서 밴(VAN)사 등 중간결제사업자를 배제해 카드수수료 제로(0)를 실현하겠다며 ‘제로페이’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결국 밴사에 손을 내밀었다.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한 20개 시중은행과 9개 결제플랫폼 사업자에 이어 중간결제자인 밴사에도 비용분담을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밴사가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든 하지 않든 정부는 ‘반쪽짜리 사업’을 내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밴사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제로페이의 실효성 논란이 더 커지고 참여하더라도 가맹점을 관리하는 밴 대리점이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로페이, ‘밴리스’ 포기한 이유는

서울시는 오는 20일 1만6000여곳 가맹점을 대상으로 제로페이 서비스를 시범 도입한다. 소비자가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연매출 8억원 이하 가맹점은 카드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 8억원 초과~12억원 이하 가맹점에 적용되는 수수료율은 0.3%, 12억원 초과 가맹점의 경우 0.5%다. 신용카드 사용으로 연매출 5억원 이하 가맹점이 부담하는 수수료율 1.3%보다 낮은 수준이다.

제로페이는 중소자영업자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추진 중인 결제사업이다. 중간결제사업자를 배제한 ‘밴리스’(VAN less)를 통해 ‘카드수수료 제로’를 만든다는 의도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내걸며 구체화됐고 중소벤처기업부가 함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밴리스’ 접은 제로페이, 실효성 논란 커진다

그러나 ‘카드수수료 부담 제로’라는 좋은 취지에도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능하고 은행과 각종 페이를 운영하는 결제플랫폼 사업자에 송금 및 플랫폼 운용비용을 전가하면서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다. 여기에 정부가 밴사에 사업 참여를 해달라며 손을 내밀면서 ‘졸속 사업’이란 비판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기부는 올 7월 말 은행 및 플랫폼업체와 제로페이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직후 밴사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밴리스를 표방한 정부가 제로페이 사업에 밴사를 끌어들이려는 건 밴사를 이용하지 않고선 제로페이 확산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밴리스를 고수할 경우 ‘CPM’(Customer Presneted Mode) 방식의 결제를 포기해야 하는데 소비자 불편이 커진다.

QR코드를 활용한 제로페이는 QR코드를 누가 가졌는지에 따라 결제방식이 2가지로 나뉜다. 가맹점주(Merchant)가 가지면 ‘MPM’(Merchant Presented Mode), 소비자(Customer)가 보유하면 CPM이다. MPM은 매장에 부착된 QR코드를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결제하는 방식으로 밴 결제망을 이용하지 않는다. 제로페이처럼 소비자의 계좌에서 가맹점주의 계좌로 돈이 바로 이체되는 계좌송금 결제가 이뤄지기 적합하다. 다만 MPM 결제는 CPM은 물론 신용카드보다 사용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가맹점주가 소비자 스마트폰에 내장된 QR코드를 매장의 리더기로 읽는 CPM 방식은 밴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가맹점주가 고객의 QR코드를 스캔할 수 있는 새 카드단말기를 설치하거나 기존 단말기에 관련 시스템을 추가해야 하는데 이 업무를 밴사가 맡는다. 신용공여(신용카드 결제)기능이 없는 체크카드 결제도 CPM 방식에서 밴 결제망을 이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제 편의성이 높은 CPM을 활성화해야 제로페이 성공 가능성도 높아지는데 밴사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서울시가 직접 가맹점을 모집하고 단말기를 개발해야 한다.

밴업계 관계자는 “지난 8월부터 중기부가 비공식적으로 밴사에 접촉해왔다”며 “‘밴리스’를 대대적으로 외치던 정부가 이를 포기하고 밴사를 찾은 건 MPM 결제 방식만으론 제로페이를 활성화하기 어렵다고 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제로페이 실효성 논란 커질듯

12개 밴사는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할지 의견을 모으는 중이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분위기다.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수익성 악화 불똥이 밴업계에도 튄 상황에서 ‘무상 참여’는 힘들다는 것이다. 비용을 들여가며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한 20개 시중은행과 9개 결제플랫폼 사업자의 경우 판로 확대, 플랫폼 마케팅 등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밴사는 이마저도 어렵다.

밴사가 제로페이 사업에 무상으로 참여하든, 정부로부터 일정부분의 밴수수료를 받고 참여하든, 아예 참여하지 않든 정부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처지다.

밴사가 은행 등 다른 참여사처럼 무상으로 참여해도 CPM 방식의 제로페이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밴사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아 가맹점을 직접 관리하는 밴 대리점의 반발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 대형 밴사 관계자는 “가맹점에 CPM 리더기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건 밴 대리점인데 정부가 밴사에 ‘무료 봉사’하라고 하면 (밴사가 밴 대리점에 건네는) 가맹점관리수수료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반문했다.

정부의 ‘무임승차’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밴 결제망은 밴사가 신용카드사로부터 밴수수료를 받아 구축한 인프라인데 아무런 비용부담 없이 이를 이용하는 데 대한 비판이 거셀 수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가 댄 비용으로 구축한 결제망을 제로페이 사업에 사용한다면 ‘금융회사에 대한 비금융당국의 관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밴업계는 일정 부분의 밴수수료를 보장해야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세금을 들여 밴사의 참여를 이끌어도 앞서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한 은행과 결제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뒤따른다. 은행은 계좌이체수수료를, 결제플랫폼 업체는 제로페이 플랫폼 운용비용을 각사가 부담한다.

밴사의 참여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제로페이에 대한 ‘반쪽짜리’라는 비판은 거셀 전망이다. 신용공여 기능이 없어 실효성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결제 편의성마저 떨어진다면 제로페이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서울시에서 제로페이 가맹점으로 신청한 점포는 서울시의 1차 목표인 13만곳에 한참 못미치는 1만6000여곳에 불과하다.

서울시 서울페이추진반 관계자는 “제로페이의 기본 개념은 ‘밴리스’ 기반의 결제지만 기존의 포스단말기를 사용하는 가맹점에선 밴사 역할이 불가피하다”며 “(대형가맹점 가운데) 그룹사 내 밴사를 보유한 경우 밴사 없이 CPM 결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가맹점 가운데 밴사를 보유한 곳은 SPC네트웍스를 자회사로 둔 파리바게뜨 매장이 유일하다. 이외 모든 가맹점에선 ‘밴리스 CPM’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1호(2018년 12월19~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