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9시즌 36세의 나이로 세리에A 득점왕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삼프도리아의 공격수 파비오 콸리아렐라(오른쪽). /사진=로이터
2018-2019시즌 36세의 나이로 세리에A 득점왕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삼프도리아의 공격수 파비오 콸리아렐라(오른쪽). /사진=로이터

그동안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는 노장들의 저력이 있었다. 영원한 ‘판타지스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2007-2008시즌 34세의 나이로 생애 첫 득점왕에 올랐으며 2005-2006시즌 세리에A 역사상 46년 만에 30골 고지를 돌파했던 루카 토니는 2014-2015시즌 최고령(당시 38세) 득점왕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 이탈리아 최고의 골잡이로 등극한 '36세' 파비오 콸리아렐라의 축구 여정은 최고의 시기를 경험해본 이전 ‘노장 득점왕’들과는 조금 달랐다. 30대의 나이로 두 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던 우디네세의 ‘영웅’ 안토니오 디 나탈레 정도가 콸리아렐라와 유사한 길을 걸었다.

이전까지 콸리아렐라는 ‘원더골 제조기’로 주목받았으나 정상에는 서본 적이 없는 선수다. 세리에A 무대 데뷔 후 2016-2017시즌까지 그의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은 13골이었다. 준수한 기록이지만, 최고라고는 볼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뒤늦게 득점력에 눈을 뜬 콸리아렐라는 지난 시즌 리그 19골과 함께 득점 4위에 오르는 등 더욱 완숙한 기량을 뽐냈다. 더 나아가 이번 시즌에는 처음으로 리그 20골 고지를 돌파하면서 생애 첫 득점왕 등극까지 앞두고 있다. ‘대기만성’이라는 다소 상투적일 수 있는 표현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있을까.

1983년생 콸리아렐라의 전성기는 세계적인 골잡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집어삼키고 있다(다만, 호날두 역시 34세의 노장인 것도 사실이다). 37라운드까지 26골을 기록 중인 콸리아렐라는 호날두를 5골 차이로 따돌렸으며 2위 그룹과도 4골 차를 유지하고 있어 득점왕 자리를 예약했다. 두 선수는 각 소속팀인 삼프도리아와 유벤투스의 최종전만을 남겨둔 상항이기에 호날두가 격차를 따라잡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호날두가 개인 커리어 역사상 5골 이상 넣은 경기는 2015년 4월 그라나다전과 같은해 9월 RCD 에스파뇰전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2경기 모두 5골 기록). 여기에 최근 2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치는 등 날카로움이 다소 무뎌진 호날두인 만큼 결과가 이미 정해진 것으로 봐도 무리는 아니다. 만약 콸리아렐라가 득점왕에 오른다면 이는 70년이 넘는 삼프도리아 구단 역사상 세 째의 쾌거다.


36세의 노장은 이탈리아 축구의 역사도 새로 작성하고 있다. 지난 1월 세리에A 21라운드 우디네세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린 콸리아렐라는 세리에A 역사상 최다 기록인 11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여기에 지난 3월 유로2020 지역예선 2차전에서 무려 3048일 만에 대표팀 복귀전을 치른 콸리아렐라는 페널티킥으로 두 골을 넣으며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령(당시 나이 36세 54일) 득점 기록까지 세웠다. 

2010 남아공 월드컵 F조 조별예선 슬로바키아와의 최종전에서 '원더골'에도 불구하고 팀의 패배로 좌절했던 콸리아렐라. 그러나 이후 닥친 힘든 시기까지 극복한 콸리아렐라는 36세의 나이로 세리에A 득점왕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로이터
2010 남아공 월드컵 F조 조별예선 슬로바키아와의 최종전에서 '원더골'에도 불구하고 팀의 패배로 좌절했던 콸리아렐라. 그러나 이후 닥친 힘든 시기까지 극복한 콸리아렐라는 36세의 나이로 세리에A 득점왕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로이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는 우승팀 징크스와 함께 2무 1패를 기록하며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였다. 당시 슬로바키아전에 출전한 콸리아렐라는 경기 종료 직전 환상적인 로빙 골을 성공시켰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 못하면서 탈락의 아픔과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약 8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이후 콸리아렐라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다. 콸리아렐라는 ‘11경기 연속골’의 위업을 달성한 우디네세전 이후 ‘스카이스포츠 이탈리아’와의 인터뷰 도중 눈물을 삼켰다. 이어 그는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이 내가 결코 생각하지도 못했던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라며 복잡하면서도 감격스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2010-2011시즌 유벤투스 입단 첫 해 리그 17경기 동안 9골을 넣으며 승승장구했던 콸리아렐라는 파르마전에서 치명적인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쓰러졌다. 이후 좀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콸리아렐라는 나폴리 시절부터 이어진 스토커의 살해협박까지 받으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콸리아렐라는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2014-2015시즌 본인의 프로무대 첫 팀이었던 토리노로 이적해 13골을 넣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인 콸리아렐라는 이듬해 삼프도리아로 떠나 도전을 이어갔다. 2017년 2월 스토킹범에게 징역 4년 8개월 형이 확정되면서 더욱 안정감을 찾게 된 콸리아렐라는 이번 시즌, 다소 늦었지만 처음으로 찾아온 전성기를 마음껏 펼치고 있다.

이탈리아 축구에는 선수들이 보여준 ‘낭만’이 남아있다. 위기에 빠진 ‘올드 레이디’ 유벤투스와 끝까지 함께한 '신사' 델 피에로의 ‘희생’과 전 소속팀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한 후 눈물을 흘린 바티스투타의 진심어린 ‘애정’이 있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오랜 도전 끝에 득점왕이란 영예를 눈앞에 둔 36세 골잡이의 감동적인 '도전'이 세리에A 팬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