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삼산면사무소가 전시하는 영국군의 기록사진. /사진=박정웅 기자
거문도 삼산면사무소가 전시하는 영국군의 기록사진. /사진=박정웅 기자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는 비경 속에 아픈 역사가 스며있는 여행지다. 거문도사건과 관련한 내용으로, 영국의 동양함대는 1885년 4월부터 약 2년간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다.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영국의 명분이었지만 제국주의의 폭거와 조선의 무력함이 확인된 사건으로 기록된다.
영국은 거문도를 무단 점령한 뒤 거문도의 지명을 해밀턴 섬이라고 했다. 해밀턴은 영국 해군 제독의 이름이다. 더 기막힌 건 조선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열흘 뒤 안 것이다. 영국이 중국 주재 관료를 통해 보내온 ‘해밀턴 섬을 점령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통해서다.

거문도역사공원 영국군묘. /사진=박정웅 기자
거문도역사공원 영국군묘. /사진=박정웅 기자
거문도에는 사망한 영국 해군의 무덤이 있다. 이들은 거문도사건 당시 교전 전사자가 아닌 사고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산면사무소 뒤편, 회양봉 산책로의 역사공원에는 3명의 수병을 기리는 묘역이 있다. 가장 오른쪽의 화강암 묘비는 폭발사고로 사망한 2명을, 그리고 중앙 나무 묘비는 거문도사건과 무관한 1명(1903년 사망)을 각각 기린다.
영국군의 무단 점령은 역설적으로 거문도에게 제1호 타이틀을 안겼다. ‘신사들의 스포츠’ 테니스가 거문도에 처음 상륙한 것. 당시 영국군이 만든 테니스장은 현재 거문초등학교 자리였다고 한다. 회양봉 산책로 초입의 초등학교에는 이같은 내용을 전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교정 오른편 밭길을 따라 오르면 새로 만든 테니스장이 있다. 이 테니스장에서 최근 대한민국 제1호 테니스장이 거문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거문초등학교와 해밀턴 테니스장 안내판. /사진=박정웅 기자
거문초등학교와 해밀턴 테니스장 안내판. /사진=박정웅 기자
또 삼산면사무소에서 거문도사건의 흔적을 쫓을 수 있다. 2층 대회의실에는 당시 영국군의 기록사진을 볼 수 있다. 기록사진은 주중 업무시간에 볼 수 있으며 1층에서 담당자가 안내한다.
아울러 일제의 침략사도 확인된다. 거문도 여행의 상징인 거문도 등대(거문등대)는 일제가 1905년 세운 남해 최초의 등대다. 또 서도의 불탄봉 트레킹 코스 등에는 일제가 거문도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만든 벙커 등 군사시설이 남아 있다.

거문도 고도 거리 풍경. 적산가옥임을 짐작할 수 있는 건물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거문도 고도 거리 풍경. 적산가옥임을 짐작할 수 있는 건물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이러한 흔적은 거문도여객터미널 가까이에서도 확인된다. 선착장을 따라 걷다보면 2층 구조의 적산가옥을 만난다. 현재 대부분 개량된 가운데 일부의 가옥에서 적산가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중 다다미방 원형을 활용한 민박집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