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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토목·플랜트 건설 분야 수출 역군으로 불리던 국내 건설업체가 2010년대 중반 이후 해외에서 고전하는 이유로 중동 발주처의 저유가 불황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국 업체의 무분별한 저가 수주가 꼽힌다. /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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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
#. 올 초 국내 시공능력평가 5위 대우건설이 이라크 알 포(Al Faw) 신항만 컨테이너 부두 추가 공사계약을 따냈다. 공사금액은 26억2500만달러(약 2조9000억원). 대우건설 연간 매출(2019년 기준)의 3분의 1을 넘는 규모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이 공사를 최종 수주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 2013년부터 알 포 신항만사업에 참여했던 대우건설은 추가 공사의 계약 조건을 놓고 이라크 정부와 한동안 협상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 업체가 이라크 발주처에 지속적으로 저가 공사비를 제시하며 수주 공세를 펼치자 대우건설은 사업비를 더 낮춰달라는 압박을 받았다.
중국의 글로벌 엔지니어링시장 점유율은 ▲2016년 21.1% ▲2017년 23.7% ▲2018년 24.5% ▲2019년 25.4% 등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기록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같은 기간 한국 건설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2016년 7.3% ▲2017년 5.3% ▲2018년 6.0% ▲2019년 5.2% 등으로 감소세를 기록했으며 순위도 5위에서 6위로 떨어졌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무한신뢰로 글로벌시장을 압도해 온 K-조선 역시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렸다. 중국 조선업체는 정부의 금융지원에 힘입어 저가 수주전략을 펼친 결과 지난해 1분기 글로벌 수주 순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한국은 지난해 전체 발주량 순위에서 1위를 지켰지만 중국의 마구잡이식 수주 전략에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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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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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저가 공세… 한국 건설업체 피해 잇따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 건설 매출은 2014년 이후 글로벌시장 점유율 1위다. 이는 국가 차원의 인프라 수출정책(일대일로)에 힘입은 것으로 중국 건설업체는 금융지원뿐 아니라 해외투자 심사 간소화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중국 국유기업이 참여한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는 전세계 1700여건에 이른다.
2010년대 초호황기를 틈타 국내 건설업체도 ‘묻지마 해외수주’에 뛰어들었지만 저가 수주 경쟁에 휘말렸다. GS건설은 2013년 해외 저가 수주로 1조원의 손실을 냈다.
단지 국내 기업에 피해를 주는 것만이 아니다. 국내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글로벌시장 상위 10개 업체 중에 절반이 중국 업체일 정도로 기술력 면에선 뒤지지 않는다”며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상 건설공사는 일자리 창출과 내수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데 중국 업체의 경우 자국 인력을 데려와 일을 시키고 저가 수주를 조건으로 운영권을 보장받아 추가 수익을 얻다 보니 발주처가 빚만 안게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대우건설이 올 초 수주한 이라크 알 포 신항만사업 입찰 때도 이 같은 문제가 있었다. 중국 업체는 발주처인 이라크 정부에 대우건설보다 낮은 공사비를 제시했지만 수주에 실패했다. 이유는 중국 업체가 내세운 조건이 단순시공만이 아닌 20년 운영권을 보장받는 것이어서 발주처 입장에서 이익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선 이 같은 방식으로 중국 업체가 사업을 영위해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내수경제 기여 없이 이익만 가져간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낮은 공사비만 보고 중국 업체에 사업을 제공했던 현지 발주처가 이익 없이 부채만 남는 피해를 입은 후 중국을 기피하고 있다”며 “중국이 이제는 기술력에선 뒤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지만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분야만 보면 여전히 하자 발생이 많아 신뢰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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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조선’ 맹추격하는 중국… 문제는 기술력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만 보면 국내 조선업체의 수주 실적은 중국 업체의 3분의1 수준인 135만CGT에 그쳤다. 클락슨리서치 조사 결과 국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한 척당 가격은 신조선가(새로 제작한 선박 가격) 기준 1억8600만달러(2050억원)로 중국의 주력 선종인 일반 유조선(4850만달러)보다 3.8배 비쌌다. 중국 조선업체는 지난해 캄사르막스(8만~10만톤) 벌크선 한 척당 가격을 2600만~2700만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전년 대비 20%가량 내린 수준이다.
중국은 2012~2017년 글로벌 조선시장 수주 1위였다가 한국에 밀렸다. 이후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저가 수주와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국영기업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LNG선 ‘글래드스톤’호는 2018년 6월 해상에서 엔진 고장으로 멈추는 대형 사고를 냈다. 후동중화조선은 중국 LNG선 수주 1위 기업 CSSC의 계열사다. 통상 20년 이상 운영되는 LNG선이 건조 2년 만에 운항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을 놓고 기술력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사고 원인을 찾고 기술 보완을 했지만 이후 발주가 없어 검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발주 회사가 휘청거릴 만한 대형 사고여서 선사가 더욱 중국에 발주를 넣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