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운사 코스코의 컨테이너 박스가 벨기에 앤트워프항에 쌓여 있다. /사진=로이터
중국 해운사 코스코의 컨테이너 박스가 벨기에 앤트워프항에 쌓여 있다. /사진=로이터
해상운송과 육상운송, 철도와 항공 간 경계를 허무는 ‘통합물류’ 바람이 글로벌 해운업계에 거세게 불고 있다. 글로벌 선사는 초대형선으로 비용을 절감하면서 물류 관련 기업 인수·합병(M&A)과 지분 투자 등을 통해 경쟁력 제고와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2010년부터 10년 동안 선박 대형화 경쟁이 치열했다면 향후 10년은 친환경과 함께 통합물류가 새 먹거리로 떠오를 전망이다. 

프랑스 해운 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HMM(구 현대상선)의 보유 선복량은 72만8233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글로벌 선사 8위에 자리하고 있다. 글로벌 선복량 점유율은 3%다. 

HMM은 지난해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인 2만4000TEU급 선박 12척을 아시아~유럽 항로에 투입하면서 글로벌 선복량 8위였던 선사 양밍(대만)을 앞질렀다. 양밍의 선복량은 62만7267TEU다. 

HMM은 올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만6000TEU급 8척을 인도받을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HMM의 선복량은 85만6233TEU가 된다. 글로벌 7위 선사인 에버그린(대만)의 선복량(130만1019TEU)과는 여전히 격차가 있지만 지난해 초 HMM의 선복량이 45만TEU였던 점을 고려하면 큰 성장세다. HMM은 오는 2022년까지 110만TEU 선복량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봤다. 

HMM은 선박 대형화를 통해 글로벌 선사들과 체급을 맞춘 다음 ‘통합물류’ 경쟁에 대비해야 할 것으로 관측했다. 기존 ‘포트 투 포트’(PORT-TO-PORT)에서 해상운송~항만하역~창고보관~육상운송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서비스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류동근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부 교수는 “해운산업이 커지면서 전후방 산업인 철도·창고·택배 등 통합이 시작된 것”이라며 “이를 통한 비용 절감과 경쟁력 제고 및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최종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물류사업 M&A·지분 투자 활발 

글로벌 해운사 물류사업 진출 현황
글로벌 해운사 물류사업 진출 현황
글로벌 선사는 새로운 경쟁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해상을 넘어 육상물류·항공·철도 운송 사업에 손을 뻗고 있다. 글로벌 1위 선사인 머스크(덴마크)는 2018년 1만8000TEU급 선박 20척 발주를 끝으로 신조 발주를 하지 않고 물류창고와 육상운송 관련 업체 인수에 집중하고 있다.

머스크는 인도 디지털 포워딩(국제물류주선업체) 스타트업 ‘블랙벅’과 미국 디지털 포워딩 스타트업 ‘로드스마트’에 투자해 화주의 해상·육상운송 통합 운영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머스크는 전자상거래 시장 성장에 따른 보관 및 배송 관련 사업의 잠재력을 보고 창고 및 수·배송 서비스 전문업체 ‘퍼포먼스 팀’을 5억4500만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전세계 130개국 220개 물류센터와 200개 이상의 배송업체를 보유한 영국 반품 물류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문 스타트업 ‘지그재그’에도 투자를 마쳤다.

글로벌 선사 3위 코스코(중국·국영업체)의 물류사업 확대도 활발하다. 싱가포르 물류기업 ‘코젠트 로지스틱스’ 지분 100%를 인수한 데 이어 말레이시아에서도 구퍼 인티그레이티드로지스틱스 등 물류회사 4개의 지분 80%를 사들였다. 현지 물류기업 인수를 통해 해상부터 육상까지 한 번에 관리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리스 포워딩 철도수송기업과 헝가리 철도하역회사 등 철도운송 관련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코스코는 중국 전자상거래기업인 ‘징둥닷컴’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500개 이상의 창고와 15개 물류단지를 확보하고 25만대의 배송차량도 활용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앞세우며 종합물류를 확대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이는 만큼 민간기업체보다 사업을 키우는 힘이 강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4위 선사 CMA-CGM(프랑스) 역시 글로벌 물류기업 ‘세바 로지스틱스’ 지분 100%를 인수해 내륙운송시장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엔 화물기 전용법인 ‘CMA-CGM 에어카고’를 설립하고 카타르항공으로부터 화물기 A330-200F 4대를 구매하는 등 항공화물부문의 진출을 공식화했다.

“경쟁 뒤처질라” 차세대 대비 시급

HMM 컨테이너선(왼쪽), CMA-CGM 컨테이너 박스. /사진=HMM, 로이터
HMM 컨테이너선(왼쪽), CMA-CGM 컨테이너 박스. /사진=HMM, 로이터
HMM의 최종 지향점도 ‘종합물류기업’이다. 사명을 현대상선에서 HMM으로 바꾼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상선에 국한되지 않고 물류까지 섭렵한 글로벌 톱 브랜드로 도약하겠단 의지다.

하지만 이제야 선박 초대형화 경쟁에 참여한 HMM으로선 서비스 안정화 후에야 물류사업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HMM 관계자는 “아직 통합물류로 사업을 확장하기엔 여력이 충분하지 않지만 최종적으론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협력·M&A·직접 진출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차세대 시장 대비가 너무 늦어지면 자칫 5~10년 뒤 글로벌 선사는 물론 전자상거래기업 등 대형 화주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의 경우 미국해운법상 NVOCC(수송수단 없는 해상화물운송업자) 면허를 취득하면서 5000여개의 컨테이너를 활용해 해상운송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수십억달러를 들여 화물 운송용 항공기와 트럭도 사들여 왔다.

해운업계는 향후 대형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이 선박을 구매해 해상운송을 직접 진행할 것으로 예측했다. 기존 해운사는 하청업체로 전락하거나 새로운 경쟁자 탄생을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량 화물을 앞세운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물류에 욕심낼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해운사를 활용하고 있지만 나중엔 비용절감 차원에서 선박도 직접 관리하려고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선사는 물론 정부가 투자와 지원을 통해 차세대 경쟁을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민영 인하대 아태물류학과 교수는 “화물 정보를 쥔 기업이 결국 힘을 갖게 될 것”이라며 “포워더와 배송 등 관련 업계의 반발을 넘고 ‘도어 투 도어’(DOOR-TO-DOOR)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곳이 최후 승자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