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업계에서 LG생활건강이 디자인과 콘셉트 도용 등에 대한 법적 소송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LG생활건강 사옥. /사진제공=LG생활건강
화장품업계에서 LG생활건강이 디자인과 콘셉트 도용 등에 대한 법적 소송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LG생활건강 사옥. /사진제공=LG생활건강

◆기사 게재 순서
①같은 듯 다른 듯한 LG생활건강 '베끼기' 논란
②"개발비 왜 쓰나, 베끼면 되지"… 도 넘은 식품업계 '미투 마케팅'
③유명하면 위험하다? 원조가 패소하는 이상한 '상표권' 소송


레드오션인 화장품업계에서 '베끼기' 논란은 적잖게 발생한다. 성분이나 품질은 이미 상향 평준화를 이룬 만큼 기업별로 콘셉트나 디자인으로 차별화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차별화도 쉽지 만은 않다. 유사성 수위를 판단하는 것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비슷하다고 지적하는 수준에 그치기도 하고 기업에서 직접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법적공방을 통해 다툼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LG생건 "토니모리가 디자인 베꼈다"

LG생활건강의 빌리프 제품(왼쪽)과 토니모리의 닥터오킴스 제품. /사진제공=각사
LG생활건강의 빌리프 제품(왼쪽)과 토니모리의 닥터오킴스 제품. /사진제공=각사

LG생활건강과 중견 화장품 브랜드 토니모리는 상품 디자인을 두고 갈등을 겪었다. LG생활건강은 토니모리가 자사 제품 '빌리프'의 상징과 같은 막대그래프 표장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LG생활건강은 2010년 8월 화장품 브랜드 '빌리프'를 출시했다. 빌리프는 ▲제품에 포함된 천연성분의 함량을 가로 막대그래프와 함께 퍼센트(%)로 표기하고 ▲포함되지 않은 유해 화학성분을 '0%'로 표기하는 표장을 내세웠다.

약 9년이 지난 2019년 4월 LG생활건강은 토니모리에 경고장을 발송했다. 토니모리의 '닥터오킴스' 제품이 이 표장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사용중단과 함께 유통 중인 제품 폐기 등을 요구했다. 같은 해 9월24일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LG생활건강의 주장 요지는 ▲효능 ▲가로 막대그래프 ▲퍼센트 표기 ▲유해성분들의 내용 표기 ▲유해성분 0% 표기 등 빌리프 표장의 공통된 특징을 토니모리가 모방했다는 것이다. 이 표장은 일본 산업디자인 진흥원의 '굿디자인어워드'에서 '굿디자인'으로 선정됐다. 이어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가 발간하는 2010년도 디자인 연감에 수록됐다.

두 제품을 비교하면 성분 함량 표시와 막대그래프 활용 등 유사한 점이 있다. 양사 간의 법정공방에서 최종 승자는 토니모리였다. 1심 재판부는 토니모리 측의 성과물 도용행위를 인정해 LG생활건강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표장의 성분 표시 부분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영역에 해당된다'며 피고(토니모리)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올 2월24일 대법원은 항소심과 동일하게 '원고 청구를 기각한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겉보기 비슷한데… 법원 "아이디어 독점 안돼"


LG생활건강과 토니모리의 소송일지. /그래픽=김은옥 기자
LG생활건강과 토니모리의 소송일지. /그래픽=김은옥 기자

토니모리는 먼저 빌리프의 표장이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막대그래프 표장은 단순히 내재된 상품 성분 등 사실관계를 기술한 것으로 저작물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저작권 보호 대상은 사람의 정신적 노력으로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을 말·문자·음·색 등에 의해 구체적으로 표현한 창작적 표현형식이다. 따라서 표현된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이나 감정 그 자체는 설령 독창성과 신규성이 있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저작권의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해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해야 한다'고 판시(1999년 11월26일 선고 98다46259)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빌리프의 표장이 공통으로 가진 효능 또는 유효성분·유해성분을 문자, 막대그래프, 퍼센트 표기를 이용해 용기 전면부에 표기하는 방식 자체는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아이디어' 영역이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저작권법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토니모리는 빌리프 상품표지에 대해 주지성이 부족, 부정경쟁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다. 상품표지의 식별력이 소비자·거래자 등에 널리 인식되지 않았다는 것. 빌리프 출시 5년 후인 2015년쯤 화장품업계에선 제품 전면에 효능 내지 유효성분과 그 함량을 영문자, 막대그래프, 퍼센트를 이용해 표기한 제품이 다수 출시됐다.

한국리서치가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빌리프의 표장을 보고 떠오르는 화장품 브랜드는 피지오겔이 31%로 가장 많았다. 원래의 표장인 빌리프가 떠오른다고 응답한 비중은 18%로 공동 5위에 그쳤다. 재판부는 "원고(LG생활건강) 표장만 제시됐을 때 빌리프가 아닌 다른 화장품 브랜드를 떠올린 소비자들이 더 많다는 점에서 국내 수요자들에게 특정 출처의 상품을 연상시킬 정도로 현저하게 개별화됐거나 원고의 상품임을 표시한 표지로 국내에 널리 인식됐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LG생건이 제품 베꼈다"는 스타트업


프링커코리아의 '프링커M'(왼쪽)과 LG생활건강의 임프린투. /사진제공=각사
프링커코리아의 '프링커M'(왼쪽)과 LG생활건강의 임프린투. /사진제공=각사

반대로 LG생활건강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준비하는 곳도 있다. 뷰티테크 스타트업 프링커코리아다. 토니모리와의 화장품 표장 공방에서 '아이디어 독점 불가'로 패소한 LG생활건강이 이번엔 '아이디어를 탈취했다' 의혹을 받고 있다. 2022년 1월 LG생활건강은 뷰티테크 시장 공략을 위해 미니 타투 프린터를 개발한다고 밝혔다. 타투 프린터는 블루투스로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과 기기를 연결해 화장품 잉크로 원하는 디자인의 타투를 그리는 제품이다.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잡음은 LG생활건강이 미니 타투 프린터 '임프린투'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 참가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프링커코리아는 LG생활건강의 임프린투가 자사 '프링커'의 콘셉트와 기술 등을 베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프링커코리아는 2018년 '프링커프로'를 출시했다. 이후 2019년 LG생활건강에서 협업 가능 여부와 공동개발 문의를 해왔고 2년간 유효한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했다. 이후 소통이 중단됐고 LG생활건강이 2020년 '타투 프린터'라는 이름으로 디자인 특허를 등록했다는 것. 프링커코리아는 중소기업 기술보호울타리 피해구제 접수를 마치고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제품이 아직 출시되지 않아 기술 사양이 공개되지도 않은 단계에서 특허 침해, 기술 및 아이디어 탈취 등을 제기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LG생활건강 측은 "NDA 체결 이후 교류가 없어 기술자료를 제공받은 적 없으며 기술 개발을 위해 잉크 카트리지 회사인 HP와 협업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기술 면에서 차별점을 강조했다. 타투를 그린 뒤 유지하기 위한 프라이머와 픽서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LG생활건강의 제품은 파우더와 밤타입이고 프링커코리아의 제품은 스프레이 타입의 액체 제형을 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타투 프린터는 특정 업체만 독점할 수 있는 콘셉트가 아니다"라며 "타투 프린터의 개념은 1999년 HP가 출원·등록한 특허에도 공개됐고 이 특허권도 시간이 지나 소멸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