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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육성 셰프는 인생의 스승이죠. 배움에 끝이 없는 게 요리가 아닐까 싶은데, 제 요리 인생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한결같이 가르침을 주신 분입니다. 그런 분과 벌써 17년을 함께했습니다."
황진선 진진 셰프는 중화요리계 대부이자 스승인 왕육성 진진 대표를 언급하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 시작 전만 해도 자신감 넘치던 그의 표정은 왕 대표와의 인연을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수줍은 20대 청년으로 돌아왔다. '왕 쓰부'(사부)라고 칭하며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이연복 목란 셰프(대표)도 왕육성 대표의 자서전 서평에서 "항상 가르침을 주는 육성 형님은 중화요리계의 BTS요 내 인생의 스승"이라고 할 만큼 왕 셰프는 업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황진선씨는 왕육성씨의 수제자로서 현재 중식당 '진진'을 운영하는 오너셰프다. 매장엔 가족 느낌이 물씬 풍기는, 두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어 그들의 인연을 짐작할 수 있다.
2014년 말부터 준비를 시작해 2015년 1월11일 11시에 처음 문을 연 진진은 입소문을 탔고, 2년 뒤인 2017년엔 미쉐린가이드(미슐랭가이드) 서울편에서 '1스타 레스토랑'에 이름이 올라 관련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선정된 중식당은 포시즌스 호텔 유유안과 함께 진진이 유일하다. 이후 2019년까지 계속 1스타 레스토랑을 유지하다가 2020년부터는 '가성비 맛집'으로 불리는 '빕구르망'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태권도 선수 꿈 대신 이룬 요리사의 꿈
황진선 셰프의 어릴 적 꿈은 세 가지였다. 가수, 태권도 선수, 요리사. 이 중 가수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태권도인(人)의 길을 걸었다. 그는 고양시에서 태권도 시범단으로 활동하며 대회 출전은 물론, 대학 과정도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런 그에게 뜻하지 않은 무릎 부상이 찾아왔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그는 "당시 저는 정말 많이 먹었는데 요리사를 하면 절대 굶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고 운 좋게도 코리아나호텔 대상해라는 큰 중식당에서 시작해 수년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부주방장까지 올랐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기본기가 없었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도 줄여 재료의 특성을 익히며 요리 연습을 했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았던 게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고 부연했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당시 대상해 오너셰프였던 왕 씨의 눈에 들었고 모든 것을 걸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게 '진진'이다. 설립 당시 신념이라면 '동네에서 즐기는 호텔 요리'였다.
황 셰프는 "그저 중식이라 하면 자장면과 짬뽕, 탕수육 밖에 떠오르지 않을 만큼 사람들의 인식은 지나치게 단편적이었다"며 "호텔에서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보다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왕 쓰부와 함께 가게 위치 선정부터 모든 것을 신경 썼다"고 말했다.
진진은 '자장면'과 '탕수육' 대신 '멘보샤'와 '대게살 볶음'을 비롯한 대표 메뉴 몇 가지만 판다. 그럼에도 예약 후 방문이 무색할 만큼 사람이 몰려 본관 건너편에 신관을 열었는데 구청에서 안전 문제로 양쪽을 잇는 횡단보도를 설치해줄 정도였다. 사람이 몰리면서 주변 상인들과 관계가 돈독해지는 등의 효과도 생겼다. 이는 철저한 영업 정책에 따른 것이다.
그는 "점심 장사를 포기하는 대신 5시부터 시작해 2시간 단위로 예약을 받아 자정에 마무리했다"며 "맛있는 요리를 술과 함께 즐기려면 비교적 여유 있는 만찬이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리 즐기는 손님의 인사 한마디에 보람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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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은 본관 신관 외에도 매장 성격을 달리한 '가연', '야연'이 추가됐다. 본관은 골목에 자리한 탓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반면 가족과 연인과 함께 올 수 있는 콘셉트의 '가연'은 주차가 가능하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본관과 달리 점심때부터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새벽 2시까지 즐길 수 있는 '야연'은 7월 중순 다시 문을 연다.
황 셰프는 "초창기 때 한 테이블 일행이 술에 취해 싸움이 난 적이 있다"며 "신기하게도 잊지 않고 계산을 하길래 '맛있게 드셨냐'고 물었더니 한목소리로 '이렇게 맛있는데 왜 돈이 이것밖에 안 나오냐'며 되물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뜨거운 불과 싸우며 요리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손님들이 '잘 먹었다'는 한마디에 보람을 느끼고 모든 피로가 풀린다"고 했다.
매장을 늘린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추운 겨울, 운영을 중단한 매장이 얼지 않도록 관리하다가 과로로 쓰러지며 생사의 기로에 선 기억도 있다. 이후 한층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졌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지난 3월 화촉을 밝혔다.
인생 2막을 시작했다는 황 셰프는 "호텔 요리를 저렴하게 제공하려면 재료 선정부터 레시피 개발까지 일련의 과정에 상당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좋은 재료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조리법으로 최고의 요리를 손님에게 제공하는 게 진진의 신념이며 맛의 비결인 만큼 많이 오셔서 맛보시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