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데이터 주권 강화 기조와 맞물려 독립적인 AI 역량 구축을 강조해 온 네이버의 전략이 재조명되면서 그간 '느리고 비효율적'이라 평가받던 행보가 선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하정우 네이버 클라우드 센터장이 서울 영등포구 63로 기술보증기금 서울지점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부, AI개발 동향점검 및 활용-확산방안 회의'에 참석, 중국 DeepSeek 동향 및 대응과 관련해 발제 하고 있는 모습. /사진=머니S(임한별 기자)

네이버가 '소버린 AI'(주권 인공지능) 정책 수혜 기대 속에 코스피 시가총액 5위에 올랐다. 정부의 데이터 주권 강화 기조와 맞물려 독립적인 AI 역량 구축을 강조해 온 네이버의 전략이 재조명되면서다. 소버린 AI가 단순히 네이버 기술 프로젝트를 넘어 한국 데이터 주권의 시험대이자 국가 전략으로 주목받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전략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26일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가 소버린 AI 정책 수혜 기대감에 힘입어 코스피 시가총액 5위에 올랐다. 지난 25일 기준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약 44조9169억원으로 현대자동차를 넘어섰다.


이 같은 주가 상승 배경에는 이재명 정부가 차세대 국가 전략으로 내세운 소버린 AI가 있다. 외산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데이터 주권을 지키겠다는 새 정부의 전략과 오랜 시간 독립적인 AI 생태계 구축을 고수한 네이버의 행보가 맞물리며 시장의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는 국내 기업들이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와 손잡고 생성형 AI 개발에 나서던 시기에도 독자 개발 방식을 택했다. 자체 기술로 초거대 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를 선보였고 이후엔 이를 고도화한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했다. 1조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춘천과 세종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며 인프라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이는 생성형 AI가 미래사회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될 전망인 만큼 단순한 AI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의 경제적 자율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특정 국가의 AI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가 플랫폼에 종속되는 안보의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전략은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느리고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속도와 자본력에서 밀리는 만큼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랐다. 정권 교체 이후 정부가 AI 정책 기조를 소버린 AI로 선회하면서 네이버의 행보는 재평가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 실현을 1호 공약으로 내걸며 재정과 정책 역량을 총동원해 소버린 AI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왔다. 울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서는 "챗GPT가 있으니 소버린 AI 개발이 낭비라는 주장은 베트남에 쌀이 많으니 한국에서 농사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다"고도 했다.

소버린 AI 기조는 첫 정부 인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배경훈 LG AI 연구원장은 LG의 '엑사원'(EXAONE) 개발해 국내 자체 생태계 확장을 이끌어 왔고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으로 임명된 하정우 전 네이버 클라우드 AI 총괄 역시 자국 AI 기술 개발을 강조한 인물이다.

소버린 AI가 지속할 수 있는 기술 자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수익 창출과 시장 안착이라는 현실적 과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국내 AI 생태계가 미국과 중국 등 빅테크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외산 AI에 의존하지 않고도 경쟁력을 갖추려면 국가 차원의 자체 인프라 구축, 정교한 제도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춘식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생성형 AI는 고성능 GPU 등 막대한 컴퓨팅 자원을 요구하는데 국내 기업이 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은 아직 부족하다"며 "정부가 공공 클라우드 인프라를 확대하거나 연산 자원을 민간에 개방하는 식의 전략적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거대 언어모델 분야는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만큼 국내 AI가 단순히 이들을 추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만의 특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재홍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교수는 "한국은 고유한 언어와 문화, 서비스 환경을 바탕으로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며 "예컨대 의료, 공공 행정 등 고신뢰 기반의 AI 적용 분야에서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특화된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처럼 한국 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시장을 대상으로 소버린 AI를 수출하는 전략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