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토넘과의 10년 동행을 마무리하는 한국 축구의 아이콘 손흥민/ ⓒ AFP=뉴스1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손흥민이 결국 토트넘을 떠난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다시 누비는 모습을 보고 싶던 팬들, 최고의 리그로 통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남는 것을 바라던 팬들이 적지 않았겠으나 당사자 아쉬움에 비할 바 아니다.

손흥민 스스로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고 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나이에 다시 도전을 외친 그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매머드 클럽에 입단하면서 한국인 1호 프리미어리거로 등극한 것이 2005년 여름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여름의 끝자락, 손흥민이 독일 분데스리가를 발판 삼아 토트넘에 입단하면서 또 다른 전설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손흥민 전후 제법 많은 한국 선수가 축구종가 땅을 밟았으나 박지성 외에는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는 케이스를 찾기 어렵다. 이영표(토트넘)와 기성용(스완지, 뉴캐슬)처럼 나름 존재감을 보인 선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계가 있었다. 그만큼 벽은 높았다. 손흥민도 처음은 다르지 않았다.

큰 기대를 받고 토트넘에 입단한 2015-16시즌, 손흥민은 EPL 28경기에서 고작 4골 넣었다. 각종 대회를 통틀어 40경기에 나섰으나 8골에 불과했다. 해결사 임무를 맡긴 공격수가 골을 넣지 못하자 동료들의 패스는 점점 줄었다. 공 좀 달라고 손 번쩍번쩍 들다가 허탈하게 고개 숙이던 초창기 손흥민의 모습, 기억하는 팬들이 있을 것이다.


기다릴 줄 모르는 현지 언론이 '먹튀'라 조롱하고 곧바로 '방출 리스트'에 오르는 수모를 겪을 땐 런던 생활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많았다. 그랬던 손흥민이 다음 시즌부터 확 달라져 EPL 무대를 쥐락펴락하는 선수로 성장했으니 기막힌 반전이었다.


FIFA 푸스카스상을 비롯, 믿기지 않은 발자취를 남긴 손흥민 ⓒ AFP=뉴스1

토트넘 통산 454경기 173골 101도움. 활자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보면서도 믿기지 않던 일들이 차고 넘쳤던 손흥민이다.

공을 발에 붙인 채 질주하면서 달려드는 수비수들을 추풍낙엽으로 만들었던 원더골 덕분에 '푸스카스상'의 존재를 알았고,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가 EPL 득점왕에 등극하는 비현실적인 장면도 보았으며, 아시아 선수가 빅클럽 주장 완장을 팔에 감은 채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에 전율도 느꼈다.

기량만 특별했던 것도 아니다. 전방에서 어슬렁거려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선 뒤에도 손흥민은 악착같이 내려와 수비했고, 우리팀 스트라이커가 상대팀 스트라이커의 대포알 슈팅을 몸 던져 막는 헌신을 보여줬다. 현지 언론은 "윙포워드야 윙백이야!" 경악했고 "저 비싼 선수가 다치면 어쩌려고!" 탄식까지 들었던 선수였다.

좋은 의미에서 돌연변이였다. 대한민국 축구사는 물론 EPL 역사를 통틀어도 손흥민류는 예를 찾기 힘들다. 한두 시즌 반짝한 것도 아니고 10년을 톱클래스로 보냈는데 태도는 불행했던 시절과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를 향한 동료의 존중과 팬들의 사랑은 당연했다.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손흥민.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 AFP=뉴스1

천부적인 감각과 호쾌한 드리블, 각도와 거리를 신경 쓰지 않는 묵직한 슈팅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한국에도 한명쯤 저런 공격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속으로 품어본 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만화처럼 떠올리며 킥킥 거린 상상을 손흥민이 현실로 만들어줬다.

아시아의 축구 선수가 유럽 빅리그에서 최고 레벨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으로 간주됐다.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손흥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렸을 땀은 짐작도 어렵다. "토트넘 입단 후 하루도 빠짐없이 내 모든 걸 바쳤다"던 그의 고백은, 비단 축구하는 후배들만 귀담을 메시지가 아니다.

활동 무대가 달라질 그의 다음 페이지를 응원한다. 손흥민도 이전과 똑같은 폼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음 싶다. 함께 즐길 수 있을만큼, 우리 팬들의 수준도 많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