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이게 다 빨간 사과 한 알 때문이다. 친구의 경기 루틴을 깨트려 이기고 싶은 욕망이 싹튼 것도, 또 '승리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은 것도. 사과는 유혹이자 징크스의 근원이었다.
국현서와 이지담은 한국체고 3학년으로, 수영 유망주이자 라이벌 관계다. 성적은 현서가 앞서 있다. 고3 첫 100m 자유형 경기에서 현서는 한국 신기록을 세운다. 지담은 낙담한다. 최선을 다해도 현서의 벽을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지난달 31일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수영장의 사과'는 두 선수의 팽팽한 심리전을 그린다. 0.01초 차이로 순위가 갈리는 냉정한 승부 속에서, 둘은 서로를 끊임없이 의식한다. 지담에게 현서는 반드시 이겨야 할 목표이고, 현서에게 지담은 우승을 위협하는 존재다.
만년 우승이란 없는 법. 두 번째 경기에선 지담이가 금메달을 목에 건다. 난생처음 1등을 차지한 지담은, 현서의 실수가 '사과 징크스'임을 알게 된다. 현서는 늘 깨끗한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스트레칭을 한 뒤 경기에 임해 왔다. 하지만 사과에 흠집이 생기자 멘털이 흔들린 것이다.
현서의 '비밀'을 알게 된 지담은, 이후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현서의 사과에 몰래 상처를 낸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절히 우승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공연은 친구이자 라이벌인 둘의 심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부상당한 어깨와 불면증을 서로 진심으로 걱정하고, '기록 향상'을 응원하면서도 경기만큼은 꼭 이기고 싶은 마음. 그래서 둘 다 괴롭다. "네가 정말 잘했으면 좋겠는데 또 네가 정말 못했으면 좋겠어"(현서), "네가 못했으면 좋겠는데 동시에 정말 못하면 화가 날 것 같아"(지담).
지담이 사과에 손 댄 걸 알게 된 뒤 둘은 큰 갈등을 겪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는 변화가 생긴다. 서로를 '라이벌'이 아닌 '원동력'으로 삼으며, 각자 '나만의 레이스'를 펼치기로 한 것. 공연 속 마지막 경기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 작품은 관객을 학창 시절로 데려간다.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경쟁심을 떠올리게 한다. 이기고 싶었지만 따라잡지 못해 좌절했던 기억, 이겼을 때 느꼈던 묘한 쾌감과 우쭐함, 그리고 친구가 못하기를 바라며 자신의 못난 마음에 괴로워했던 기억까지.
배우 이한별(현서 역)과 효은(지담 역)의 연기는 고루 좋았다. 두 사람의 호흡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다만 고음부에서 음정이 다소 흔들리는 부분이 있었고, 일부 곡에서는 가사가 음악에 묻혀 전달력이 약해진 점은 아쉬웠다.
'국현서' 역은 이한별·윤지우, '이지담' 역은 효은·백하빈이 번갈아 맡는다. 오는 12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