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이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 수주에 실패하며 올해 주력 분야 수주전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게 됐다. 석 달째 리더십 공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차기 사장 선임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사진은 한국형 전투기 'KF-21' 시제기. /사진=KAI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1조8000억원 규모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 수주에 실패했다. 올해 주력 분야 수주전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며 자체 경쟁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석 달째 이어지는 리더십 공백에 대내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차기 사장 선임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5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전자전기 개발사업에서 LIG넥스원과 대한항공 컨소시엄에 더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까지 이의신청 절차가 남아있지만, KAI·한화시스템 컨소시엄과 점수 차가 커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제안서 평가 결과가 그대로 확정될 경우 LIG넥스원이 개발 총괄, 대한항공이 기체를 맡게 된다.


전자전기는 적 항공기와 지상 레이더를 무력화하고 통신 체계까지 마비시킬 수 있어 현대 전장의 필수 장비로 꼽힌다. 이번 사업은 외국산 민항기를 개조해 전자전기 임무 장비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1조7775억원을 투자, 국내 업체가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방산 기업 간 사전 경쟁이 치열해 사업자 선정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KAI는 KF-21, FA-50, 수리온 등을 개발한 국내 유일의 항공기 체계종합 개발사라는 점을 적극 강조했다. LIG넥스원은 KF-21 통합전자전 장비, 차세대 함정 전자전 체계 등을 기반으로 전자 장비 품질을 내세웠다. 방사청이 전자전 장비 기술에 무게를 두면서 LIG넥스원이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이번 사업은 기체 자체보다는 기체에 탑재되는 전자 시스템과 핵심 장비가 관건이었다"며 "LIG넥스원은 독자적으로 전자전 장비 기술을 오랜 기간 축적해왔고, 이러한 기술력 차이가 승패를 가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KAI는 전자전기 수주 실패로 올해 주력 분야 수주에서 사실상 연패를 기록했다. 지난 4월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9613억원 규모의 군용 헬기 UH/HH-60 성능개량 사업은 대한항공, 국내 첫 민간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은 LIG넥스원이 차지했다.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KAI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후임 사장 인선 지연으로 신속한 의사 결정과 경영 연속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KAI 노조 역시 사장 부재로 KF-21 양산 준비, FA-50 수출 등 핵심 사업이 늦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지난 24일 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고, 조속한 차기 사장 인선을 촉구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사장 공백 때문에 KAI가 입찰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성적 요소나 간접적 영향을 고려하면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KAI의 지난 2분기 말 기준 누적 수주 금액은 3조1622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제시했던 수주 목표(8조4590억원)의 37.4% 수준으로 2년 연속 수주 금액이 목표치를 밑돌 전망이다. 오는 10월 열리는 'ADEX 2025'에서 추가 수주를 기대해볼 수 있지만, 대표이사 대행 체제로 협상해야 하는 만큼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KF-21 개발비 추가 부담도 떠안게 됐다. KF-21 공동 개발국인 인도네시아가 재정난을 이유로 약속한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서다. 최근 정부가 인도네시아의 최종 분담금을 1조6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줄이는 내용에 합의하면서 KAI는 방사청과 나머지 1조원을 나눠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최 교수는 "항공기를 잘 만드는 것만큼 실질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세일즈 확대도 중요하다"며 "KAI는 이러한 경영 전략을 결정해 줄 리더가 부재하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역량을 갖춘 차기 사장을 조속히 임명해 경영 내실화를 이루고 회사 안팎의 혼란을 잠재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