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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1조8000억원 규모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대형 입찰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만큼 자존심 회복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다. 두 달째 리더십 공백이 입찰 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2일까지 한국형 전자전기 연구개발 사업 입찰 절차를 진행한다. 캐나다 봄바르디어사의 중형 민항기 G6500을 개조해 전자전기 임무 장비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1조7775억원을 투자하고 국내 업체가 연구·개발을 맡는다. 현재 KAI와 한화시스템, LIG넥스원과 대한항공이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경쟁하고 있다.
전자전기는 적 항공기와 지상 레이더 등 전자장비를 무력화시키고 통신체계까지 마비시킬 수 있어 현대 전장에 필수 장비로 꼽힌다. 전자전기 시장은 올해 80억달러(11조원)에서 2033년 140억달러(19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KAI는 KF-21, FA-50, 수리온 등을 개발해온 국내 유일의 항공기 체계종합 개발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KAI는 올해 주력 분야 대형 입찰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시며 체면을 구겼다. 지난 4월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9613억원 규모의 군용 헬기 UH/HH-60 성능개량 사업은 대한항공, 국내 첫 민간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은 LIG넥스원에 돌아갔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흔들린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선 이번 수주 성공이 절실하다.
오랜 협력을 이어온 LIG넥스원과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겼다. 두 회사는 주요 항공기 개발에서 KAI가 기체를, LIG넥스원이 내부 무기체계를 맡는 방식으로 손발을 맞춰 왔다. 하지만 이번 사업을 앞두고 수익 배분을 둘러싼 이견이 불거지며 협력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KAI가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 결과에 불복해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양사 간 갈등도 깊어지는 분위기다.
KAI의 리더십 공백이 수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KAI는 지난 7월 강구영 전 사장이 조기 퇴임한 이후 두 달째 차재병 부사장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수장의 부재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워지면서 경영 연속성이 저해, 대규모 국책 사업을 총괄해야 할 체계 종합업체로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KAI 노조는 지난달 26일 성명서를 통해 "사장 부재로 인한 부작용은 현실이 되고 있다"며 "KF-21 양산 준비, FA-50 수출, 수리온 등 핵심 사업이 줄줄이 늦춰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천억원 규모의 수출 협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해 현장 불안이 커지고 있으며 계약 지연에 따라 2분기 매출도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올해 2분기 KAI의 매출은 82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 줄었다. 영업이익은 14.7% 늘었지만, 같은 기간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넥스원 등 경쟁사들이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많게는 세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아쉽다는 평가다.
KAI는 형식상 민간 기업이지만 최대 주주가 한국수출입은행인 만큼 정부의 영향력이 크다. 방산 글로벌 4대 강국 도약을 내세우는 현 정부가 KAI 사장 인선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민영화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강 전 사장의 퇴임 이후 KAI 내부에서는 민영화 찬성 비율이 50%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그간의 관례상 KAI 사장 인선은 방사청장과 수출입은행장 선임 이후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한참 중요한 시기에 사장 공백이 길어져 골든 타임을 놓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주요 방산기업들을 중심으로 실탄 확보와 컨소시엄 구성 등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