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등 외국에 나가서 메달땄다고 편지 보낼 때 눈물 날 정도로 고맙죠."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68·태인 대표)은 400명 체육 꿈나무의 '키다리아저씨'다. 지난 1987년 충청도 청주에서 전기전자·반도체메모리 부품제조회사인 태인을 설립할 때부터 장학사업에 관심을 갖고 20여년 동안 후원을 실천해왔다. 그는 "공장을 짓기 위해 첫삽을 뜨면서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체육장학금을 지원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1990년 태인체육장학회를 세운 뒤 마라톤·역도·양궁 등의 체육 유망주를 지원해왔다. 처음에는 충청북도지역 산악부와 육상부 지원을 시작으로 점차 대상을 늘려왔다.

"황영조, 장미란은 다 내 양아들, 양딸이에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할 때 황영조나 장미란 등이 직접 대상을 선별하고 수여하죠."

청소년 후원 중 체육 꿈나무들에 각별한 애정을 기울이는 것은 그가 대한산악연맹 회장에 3번 연임된 '산(山)사람'이라는 자부심이 크기 때문이다.

어려서 인왕산 기슭의 누상동에서 자란 그에게 산은 놀이터이자 고향과 같은 곳. 지난 1980년 동국대 산악팀을 이끌고 한국인 최초로 네팔 히말라야산맥의 마나슬루를 올랐으며, 이대 산악부 주장이었던 아내를 만나 사랑을 키운 곳도 산이었다. 이러한 산과의 인연으로 한국-네팔 친선협회장, 한국-파키스탄 친선협회 고문, 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회 위원장 등 체육발전을 위해 맡고 있는 직함만 단체·협회 등에서 10가지에 이른다.

그는 지난 6월 산악인으로서는 최초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300호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좀 더 의미 있는 기부채널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는 "정상에 닿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지와 체력이 필요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어려운 환경으로 재능을 이어가기 힘든 체육 유망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1억원 쾌척의 뜻을 밝혔다.

어느새 이 회장에게 나눔은 산과 같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가치가 된 것. "나눔은 공기와도 같아 한번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4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을 이끌고 있지만, 나눔은 경제적인 수준보다는 맹목적인 사랑에 기인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어렵게 살아도 국가에 세금 당당히 내고 이웃을 돕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 아닐까요? 나눔에도 인색하면서 돈 많고 좋은 옷 입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죠."

실제 "자동차 운전기사를 고용할 돈이 있으면 장학사업에 한푼이라도 더 보태겠다"며 우리나이로 칠순에 이르지만 직접 운전을 하고, 스마트폰 대신 낡은 피처폰을 사용한다.

당당한 부자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이 회장은 그의 솔선수범이 우리 사회의 작은 '씨앗'이 되기를 고대한다. "처음 청주에서 기부를 시작할 때는 주변 기업인들의 동참이 늘어나기를 바랐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한 그는 근래 회사직원들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희망을 엿보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약 200여명에 이르는 태인 직원들이 솔선수범해서 이웃돕기에 나서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눈 내릴 때 스키장을 떠올리기보다는 추위에 떨 이웃을 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후원사업을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진짜 전하고 싶은 것은 돈이 아니라 따스한 격려와 다시 일어설 용기입니다."
 
장애청소년 등 체육꿈나무 16명 지원

"돈 없어 연습 못하는 설움 씻어줘요"

▲이인정 태인 회장이 체육 꿈나무 권예지 학생 등에게 장학금 지원증서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제공=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불릴 만큼 작전구상과 전술전략, 상대와의 심리전 등 정신적인 요소가 강한 경기 컬링. 대회가 열리는 각 시트(sheet)에서는 팀 전술과 호흡을 위한 파이팅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지만, 날카로운 눈빛과 손짓만으로 작전과 격려를 나누는 국내 유일의 청각장애인 컬링팀이 있다. 서울삼성학교 컬링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에게 큰 장애물은 '소리'가 아니라 경제적 부담. 컬링부 4명의 선수 중 권예지(16·여), 정유림(16·여) 학생은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으나 가정형편상 장비유지비, 코치비, 대관료 부담에 곤란을 겪어온 것. 하지만 새해에는 권양과 정양이 운동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인정 회장이 이 두 선수의 체육활동을 위해 장비대여비와 대관료 등에 쓰일 1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권양은 "꿈을 향해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며 "내년 기량을 더욱 더 높여 2018 평창올림픽 출전의 꿈을 일궈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19일 '이인정체육장학금 체육꿈나무 지원사업' 기념식을 갖고 저소득 장애·비장애 체육꿈나무 청소년 맞춤 지원에 나섰다. 이인정 회장의 후원금으로 지원되는 이번 사업에는 서울특별시체육회·서울특별시장애인체육회 소속의 후원 신청자 중 모두 16명의 체육꿈나무들(비장애청소년 9명, 장애청소년 7명)이 지원대상으로 선정됐다.

김현경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청소년 체육 분야를 특화해 지원하는 후원은 매우 이례적이고 모범적인 기부사례"라며 "특히 청소년에 대한 지원은 미래에 대한 투자로 보람이 커서 앞으로 각계의 아낌없는 지원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