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귀국하던 날, 인천공항은 아수라장이었다. 한 포털사이트 카페 회원들이 '근조, 한국축구는 죽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야유를 보내며 대표팀에게 호박엿을 던지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이 속한 카페 이름은 '너 땜에 졌어'다.
이날 대표팀은 해단식을 갖고 국민에게 인사를 전할 예정이었지만 엿사탕 투척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바람에 해단식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선수들을 이동시켰다.
인천공항에서 엿을 뿌린 카페 회원들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7월4일에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주차장 입구 건너편에서 '한국축구는 죽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장례를 지냈다. 장례식을 마친 후에는 "국민의 마음을 엿 먹였으니 되돌려줘야 한다"며 호박엿을 들고 협회 진입을 시도하다 무산됐다. 이어 7월7일에는 축구협회에 엿 2kg를 택배로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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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카페 ‘너땜에졌어’ 회원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앞에서 ‘한국축구는 죽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채 홍명보 감독 유임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협회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민경석 기자 |
◆좋지 않은 결과에 남 탓하는 사회
카페 '너 땜에 졌어'의 공지사항에 올라왔던 '우리 보답의 엿을 뿌립시다'라는 게시물에는 "30일 오전 4시 우리의 자랑스런 호구국가대표들이 귀국한다. 4년을 기다린 월드컵에서 나라 망신시키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승전보를 기다린 5000만 국민과 붉은악마에게 시원하게 엿을 먹인 호구국가대표들에게 우리도 자그마한 답례를 할까 한다. 엿을 뿌릴 생각이다. 함께 할 분은 참석해달라"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대표팀의 귀국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이들의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이 많지만 '속이 시원하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만큼 감내해야 한다'는 식의 반응도 상당했다.
카페의 메인 페이지에는 '응원 격려를 금한다'고 적혀 있으며 필자가 들어가 본 시점에는 "발전을 위한 비판과 충고의 장. 스포츠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너 땜에 졌어'입니다. 형이 너 미워서 때리는 거 아니야~ 다~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라는 문구가 대문에 걸려 있었다.
사실 축구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국민에게 경제적으로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니다. 기분을 상하게 했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가장 크게 손해 본 사람이 누구인지 따져본다면 축구선수들이다. 좋은 결과를 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고 그로 인해 현실적인 타격을 받아 속상해 할 사람들에게 단지 기분 상한 것에 그칠 사람이 '너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평소 '너 때문에'라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잘 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에서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먼저 '너 때문에'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자녀가 원하는 대학의 입시에서 떨어졌을 때 엄마가 자녀에게 "너 때문에 우리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까. 자녀가 공부를 제대로 못해 입시에 떨어졌지만 어쨌든 불합격한 본인도 힘들어 할 순간에 "엄마가 너 미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다~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며 돌 던지는 심정으로 대한다면 어떨까.
남편이 실직을 했을 때 아내가 남편에게 "너 때문에 가정경제가 힘들어졌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설사 남편이 직장에서 일을 잘 못해 잘렸더라도 남편이 일부러 실직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면 실직으로 괴로워할 남편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을 탓하는 것에 익숙하고 상대방을 바꾸려는 데 에너지를 많이 쏟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바꾸는 데는 그만큼 소홀하기 쉽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제한적이므로 그 에너지가 어떤 곳에 많이 쓰이게 되면 다른 곳에는 상대적으로 적게 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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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탓보다는 자신을 파악하고 발전시켜라
자신이 지닌 에너지를 상대방을 바꾸는 데 사용하는 것과 자신을 바꾸는 데 사용하는 것 중 효과를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은 후자다. 따라서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고 현재보다 미래에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상대방을 탓하고 비판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 더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부부 사이에서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 "너 때문이야"라며 상대방을 탓하고 원망하면 온전하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다. 자신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직접 뭔가를 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이 해야 얻어질 수 있는 것만 탓한다면 그 가정은 달라지기 힘들다. 때로는 배우자에게 요구하기에 앞서서 자신이 먼저 배우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행동할 필요가 있다.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다. 투자하다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이 습관화돼 있으면 투자로 돈을 벌기 힘들다. 어떤 환경에서든 돈 버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투자자는 손실을 보는 원인을 가급적 자신으로부터 찾아내야 한다. 투자 시 간과한 부분은 없는지, 어떤 점을 더 파악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 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여건이 변한다면 그에 맞추고 적응하면서 자신의 투자방법이나 투자방향을 바꿔야 한다.
다만 '너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지금의 현실을 바꾸겠다는 의도 없이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아픈 감정의 해소만을 위한 것이라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히트곡 '너 때문에'에 표현된 마음도 그렇다. "사랑하지 말 걸 그랬어. 정 주지 말 걸 그랬어. 붙잡지 말 걸 그랬어. 왜 이렇게 나 혼자 아파. 너 때문에 많이도 울었어. 너 때문에 많이도 웃었어. 너 때문에 사랑을 믿었어."
우는 것을 통해서 안 좋은 감정을 해소하면 건강에 좋듯이 너 때문이라고 투덜대는 마음이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나 비난이 아니라면 스스로 아픈 마음 달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