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마감이 끝난 후 선배와 퇴근하던 길. 지하철 5호선에 함께 몸을 실은 뒤 선배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겨우 손잡이 하나를 쥐고 자리잡았을 때, 선배의 시선은 스마트폰에 집중된 사람들과 막달인 내 배를 번갈아 오갔다.
“서서가도 괜찮아요.”
선배의 걱정스런 시선이 계속되자 애써 괜찮다고 답했다. 사실 괜찮다기보다는 늘 그래왔기 때문에 익숙하다는 표현이 더 맞다. 만삭이 될 때까지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면서 임산부란 이유로 배려를 받아본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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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임산부 배지. 지난해 말 임신 소식을 안 뒤 제일 먼저 한 일이 보건소를 찾아 ‘임산부 먼저’라는 핑크색 뱃지를 받은 것이다. 당시 만삭이던 친구로부터 얻은 조언이었다.
“3개월까지가 유산 위험이 높아서 제일 조심해야 할 시기야. 출퇴근을 계속 해야 하니 무조건 보건소에서 임산부 배지부터 먼저 받아.”
그때만 해도 이 배지만 있으면 적잖은 '임산부 배려'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방 끈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배지를 달고 출근을 하던 첫 날, 기대는 곧 착각이 되어 돌아왔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하철 9호선과 지하철 5호선을 갈아타며 출근하는 동안 내 가방, 내 배지를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배려도 없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이미 꽉 차보이는 칸 안으로 수십명이 밀리듯 비집고 들어가는 9호선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자리 양보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임산부 배지를 보고 제발 밀지나 말아줬으면…. 매일 아침 전쟁 같은 출근길에 오르며 속으로 되뇌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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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위크 |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임신 2기에 접어들자 조금의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노약자석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들로부터다. 정작 ‘내 자리’라고 여겨졌던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에는 아저씨, 젊은 여성들이 앉아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니 양보해줄 일이 만무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배려석 자리는 늘 그랬고, 어느 순간부터 다시는 찾아가지 않는 영역이 되어버렸다. 마치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항의하듯 배려석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민망함이 더 싫어서인 이유도 있다.
차라리 비어있는 노약자 석에 앉아 임산부 배지를 앞에 두고 “난 임산부에요” 하고 앉아있는 쪽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이제는 누가 봐도 임신했다는 티가 나는 배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임산부 배려석 자리를 찾지 않는다. 양보를 받지 못하면 서서가거나 가끔 노약자석에 앉는 호사(?)를 누릴 뿐이다.
물론 임산부라는 이유로 무조건 자리에 앉아야 하고 무조건적인 양보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임산부들은 ‘배려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적어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 전에 “여긴 임산부를 위한 자리지”라는 한 두번의 망설임과, 임산부 배지가 보이면 밀지 않고 비켜가 주는 정도의 시민의식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임산부를 배려한다는 것은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