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허, 힘찬 대륙의 고동
호구폭포·평요고성·교가대원… 문명의 원시를 가다


무지개가 뜬 중국 황허 호구폭포. /사진=박정웅 기자
무지개가 뜬 중국 황허 호구폭포. /사진=박정웅 기자
중국 타이항산맥(太行山脈)은 산시성(山西省)과 허베이성(河北省)의 경계를 짓는다. 베이징 남서쪽의 이 산맥을 지나면 산시성 황토고원(黃土高原)이 펼쳐진다. 고원은 중국의 젓줄인 황허(黃河) 중류지대에 걸쳐 있으며 중국 전체 면적의 20분의1을 차지할 정도로 넓다.
해발 800~1500m의 황토고원에는 50~80m 두께의 황토가 덮여있다. 건조한 날이 많은 데다 여름철 비가 집중되면 황토층 침식이 심하다. 산허리가 급하게 깎여나간 협곡이 이어진 까닭에 대륙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도 불린다.


갈수기에 접어든 황허. 강 건너편은 또 다른 산시성(섬서성)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갈수기에 접어든 황허. 강 건너편은 또 다른 산시성(섬서성)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건조한 날씨에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환경. 늘 먼지와 황토바람을 끼고 사는 사람들은 고원 사면을 파고들었다. 그것이 바로 토굴주택, 야오둥(窯洞)이다. 황토층이어서 산허리를 수평으로 파고드는 일은 쉬웠다. 야오둥은 마오쩌둥과 시진핑이 격변기에 기거한 주택시설로도 유명하다.
황토고원이 시작되는 산시성은 중국 고대문화 발원지로 알려졌다. 비록 전설의 시대이나 요순의 도읍이 자리한 곳이어서다. 5000년 중국사를 알려면 산시성에 가보라는 말이 회자된다. 산시성의 황허는 중국의 젓줄로서 ‘모친허’(母親河)로도 불린다. 황허문명과 중국을 뗄 수 없으니 산시성은 대륙의 시원인 셈이다.

◆대륙의 심장, 호구폭포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위용을 뽐내는 호구폭포. /사진=박정웅 기자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위용을 뽐내는 호구폭포. /사진=박정웅 기자
산시성, 황허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린펀시(临汾市) 후커우폭포(壶口瀑布·호구폭포)를 찾아야 한다. 호구폭포는 황허(黃河)에서 가장 큰 폭포다. 황허가 중국의 젓줄이라면 호구폭포는 그 소리가 우렁차 대륙의 심장이랄 수 있겠다.
호구폭포는 이곳 산시성과 또 다른 산시성(陕西省·섬서성)을 가르는 진산대협곡(晋陕大峡谷)에 있다. 폭 300여m로 흐르는 황허는 호구폭포에서 30여m로 좁아진다. 따라서 물살은 더욱 거칠어지기 마련. 성난 물살은 50여m 아래로 떨어진다.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격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아찔하다.


호구폭포 원경. 폭포를 내려다보는 매력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호구폭포 원경. 폭포를 내려다보는 매력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이 같은 모습에서 ‘호구’(壶口·주전자의 주둥이) 폭포로 명명됐다. 주전자의 물이 비좁은 주둥이를 통해 쏟아져 나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형세가 보는 이를 벌벌 떨게 하니 호랑이의 아가리를 뜻하는 ‘호구’(虎口)가 더 나을 듯하다.
갈수기에 수량은 많지 않지만 우렁찬 소리와 물보라는 주변을 쉽게 압도한다. 기세등등한 호구폭포가 중국의 심장으로 불릴 만하다. 많은 중국인이 황허, 특히 이곳 호구폭포를 찾는 이유를 알 수 있겠다. 호구폭포와 이 일대는 중국 5A급 풍경명승구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고대도시 평요고성

평요고성의 골목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평요고성의 골목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옛 마을을 찾는 여행의 재미는 쏠쏠하다. 천천히 걸으면서 그곳 사람들의 느긋한 삶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의미가 있다. 촌각을 다투는 세상에서 이 시간만큼 자신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중시(晋中市) 핑야오고성(平遥古城·평요고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중국의 건축양식과 도시계획 변천과정을 잘 보여주는 고대도시로 14세기에는 한나라시대의 고대도시 유적이 발견됐다. 특히 19~20세기 중국 금융의 중심지로 기능을 했다.

평요고성 남문. /사진=박정웅 기자
평요고성 남문. /사진=박정웅 기자
14세기에 세워진 성의 둘레는 6㎞에 달한다. 성의 전체 조감은 전형적인 거북이 모양이다. 다른 성과 다른 점은 대문에 있다. 기본 4개의 대문에다 풍수에 따라 거북이 머리와 꼬리 부분에 대문을 추가해 총 6개의 출입문을 둔 것. 6개의 요새화된 출입문과 72개의 보루가 성벽을 따라 서 있다.
과거 평요현이 속한 진중(晋中)은 특히 진상(晋商)의 발상지로 알려졌다. 산시성의 약칭은 진(晋)이다. 춘추전국시대 때 가장 강성한 진나라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오래 전부터 부를 축적한 도시로 유명하다. 특히 명청대 상인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 1824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금융기구인 일승창(日升昌)이 평요고성에 있다.

평요고성의 골목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평요고성의 골목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산시성은 면류가 발달한 곳으로 '누들로드'의 출발지다. 평요고성의 한 도삭면 음식점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산시성은 면류가 발달한 곳으로 '누들로드'의 출발지다. 평요고성의 한 도삭면 음식점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이 일승창과 더불어 남문, 시장을 관리한 망루인 시루, 평요고성의 관아인 평요현서 등 둘러볼 곳이 많다. 성벽에 올라 걸으면서 평요고성을 조망하는 것도 좋다. 다만 그 거리가 길고 일부 구간이 폐쇄된 점은 주의해야 한다.
평요고성은 지역민의 생활공간이다. 식당, 노점, 객잔 등 여행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성의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을 잇는 대로가 잘 정비돼 있다. 비좁은 골목길들이 실핏줄처럼 대로와 맞닿아 있다.

성이 장방형 구조인 까닭에 성의 한복판에 우뚝 선 시루를 염두에 두고 골목투어를 하는 것도 좋겠다. 서문 쪽에서 전동카트를 이용하면 평요고성을 보다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궁리 <홍등>의 교가대원

성벽처럼 외벽이 높은 교가대원. '복'자 쓰여진 교가대원의 겹대문. /사진=박정웅 기자
성벽처럼 외벽이 높은 교가대원. '복'자 쓰여진 교가대원의 겹대문. /사진=박정웅 기자
진중시에는 또 다른 문화유산이 있다. 5A급 여유경구(명승지)인 교가대원(乔家大院)이 있다. 청대 상업금융자본가인 교치용(乔致庸)의 저택으로 산시성의 여행명소로 꼽힌다. 교가대원은 부지 1만642㎡(건축면적 4175㎡)에 6개의 대원(大院)으로 구성됐다. 20개의 소원(小院)과 313칸의 방이 있어 이른바 ‘민간 궁궐’이다.
대원을 둘러싼 외벽 높이는 10여m에 이른다. 동쪽 대문 앞에는 복(福) 자가 선명하다. 대문은 겹문 형태로 이어져 성이나 요새를 방불케 한다. 교가대원은 특히 장이모 감독과 궁리 주연의 <홍등>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아예 TV 드라마 제목으로 <교가대원>이 제작, 방영됐다.

교가대원의 귀면 수막새. /사진=박정웅 기자
교가대원의 귀면 수막새. /사진=박정웅 기자
교가대원의 구조는 외벽 담장 높이만큼이나 폐쇄적인 인상을 지울 수 없다. 6개의 대원도 높은 벽을 두고 나뉜다. 값지고 좋은 모든 것을 대저택에 두고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초원과 농경문화의 접점인 산시성 일대의 주택의 담은 높다. 외부 침입을 방어하고 먼지와 바람을 막는 기능을 한다. 그럼에도 교가대원의 성벽 같은 외벽은 돈, 여자, 식솔, 하물며 빗물까지도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는 대부호의 뜻이 반영된 듯하다.

교가대원의 한 중정. /사진=박정웅 기자
교가대원의 한 중정. /사진=박정웅 기자
문의 문양이 돋보이는 교가대원. /사진=박정웅 기자
문의 문양이 돋보이는 교가대원. /사진=박정웅 기자
<홍등>은 갇힌 공간에서 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는 넷째 첩 궁리(송련 역)를 통해 남성 중심적인 봉건사회의 폐습을 고발했다. <홍등>의 셋째부인에서 알 수 있듯 특히 여성은 죽어서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홍등>의 스토리가 교가대원의 것이랄 수 없겠으나 그 구조는 답답할 정도로 폐쇄적인 게 사실이다. 다만 규모 있게 꾸며놓은 중정(中庭)에서 숨통이 그나마 트일 정도다.
2만원(120위안) 정도로 입장료는 비싼 편이지만 교가대원을 찾는 탐방객들이 많다. 웅장한 대저택을 둘러봄으로써 자신의 부와 복을 기원하는 심사일 것이다. 건축학적인 면도 빼놓을 순 없다. 한 예로 귀면 수막새를 꼽을 수 있는데 병마용처럼 겹치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다. 게다가 포도, 매화, 연꽃 등 다양한 장식의 문양과 단청이 돋보인다.

산시성에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많다. 세계문화유산으로는 중국의 3대 석굴이 하나인 윈강석굴과 중국의 4대 불교 명산 중 하나인 우타이산이 있다. 5A급 명승지로는 몐산과 진사를 꼽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5호(2019년 6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