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갈등’ 해답을 찾아라-상] 일본의 ‘분연 문화’ 아시나요


피울 권리 vs 피할 권리. 담배의 유해성을 알리는 광고가 넘쳐나고 흡연공간이 점점 사라져도 꿋꿋한 흡연러들. 하루에도 수차례 담배연기, 담배꽁초와 맞닥뜨려야 하는 비흡연자들. 흡연권과 혐연권을 동시에 보장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십여년째 되풀이되는 흡연갈등, 그 해답을 찾아서. <편집자주>

# 서울 광화문 오피스 빌딩이 밀집된 지역의 뒷골목. 이곳에는 흡연자들의 니코틴 해방구가 있다. 삼삼오오 모여 혹은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담배 한대의 여유를 즐기려는 인근 회사 직장인이 모여드는 곳이다. 실내는 물론 주변 거리까지 온통 금연구역인 탓에 큰 길가에서 약간 빗겨난 이곳이 자연스레 ‘흡연 핫플레이스’가 된 것. 하지만 이곳도 온전한 흡연공간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보니 간접흡연을 당한 비흡연자들은 불쾌하고 흡연자 역시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워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 명시된 흡연구역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배경이다.


# 일본 도쿄 시부야역 부근. 건물 곳곳 사이사이, 뒷골목에서도 아루키타바코(길거리 흡연)를 즐기는 이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흡연러들이 향한 곳은 거리마다 마련된 흡연부스. 60대 중년부터 2030세대 여성들 그리고 관광객들까지 이곳에 들어서면 자유롭게 흡연을 즐긴다. 흡연부스는 흡연자들과 비흡연자들을 동시에 배려한 일본의 분리형 금연정책 중 하나다. 일본은 대부분 도심 거리에서 흡연 시 고액의 과태료를 물리는 대신 어디서든 도보로 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흡연부스를 마련해뒀다. 적어도 이곳에선 흡연자들이 ‘길빵충’, ‘흡연충’이라고 죄인취급 당하는 일은 없어보였다.


신주쿠 거리에 있는 흡연부스 안에서 사람들이 흡연을 즐기고 있다. /사진=김설아 기자
신주쿠 거리에 있는 흡연부스 안에서 사람들이 흡연을 즐기고 있다. /사진=김설아 기자

지난 6월 말.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거리. 거리 곳곳에 ‘보행 중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발걸음을 옮기던 사람들의 손에 담배가 들려있는 모습은 볼 수 없다. 한 한국인관광객이 담배를 꺼내 물려고 하자 동료가 “야, 일본에서 길빵하면 벌금 장난 아니야. 흡연구역에서 피우고 오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도보로 1분 거리에 있는 흡연부스로 향했다.
◆도보 5분 거리마다 흡연부스

“꼭 길거리가 아니어도 담배를 피울 곳은 많다.” 이날 만난 일본인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얘기다. 한 일식당 안의 흡연실에서 만난 야마모토씨는 “길거리, 식당, 카페 등 웬만한 곳엔 모두 흡연실이 마련돼 있다”며 “금연구역 흡연구역을 분리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도록 해 편안하게 흡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10년째 흡연을 하고 있지만 불편하거나 눈치본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며 “일본은 흡연자들에게 천국이지만 비흡연자 만족도도 높다”고 소개했다.

실제 야마모토씨가 담배를 피운 식당 옆 훼미리마트 편의점과 커피전문점에도 흡연실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어렵지 않게 개방형 흡연부스를 찾아볼 수 있다. 꽤 넓직한 공간에 칸막이나 나무로 공간을 분리해 행인들에게 새어나갈 담배 냄새를 최소화했다.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이 흡연부스 앞을 몰려 지나나기도 했지만 연기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우회적으로 피해 지나가지 않았다.


비흡연자인 시바타 히로카츠씨는 “비흡연자와 흡연자 모두를 위한 흡연장소가 있다는 게 긍정적”이라며 “흡연부스가 있으면 애연가들은 지정된 곳에서만 담배를 피우고 비흡연자도 길에서 불쾌한 담배연기를 직접 맡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시부야 거리에 있는 JT에서 운영 중인 독립형 흡연공간. /사진=김설아 기자
시부야 거리에 있는 JT에서 운영 중인 독립형 흡연공간. /사진=김설아 기자

실외에 마련된 흡연부스 안은 더 여유로웠다. 5~10명이 각자 잡은 위치에서 취향에 맞게 흡연을 즐기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 수십명의 사람이 들어가 퀴퀴한 담배냄새를 뿜어내는 한국의 흡연구역과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실내는 물론 실외 곳곳에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쪽에 몰리지 않고 여러 곳에 분산된 것으로 풀이된다. 덕분에 거리 바닥에선 가래침이나 오물, 담배꽁초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본 성인 5명 중 1명가량이 흡연자인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풍경이다. 한국은 일본보다 흡연율이 높기도 하지만 거리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흡연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길거리에서 침과 담배꽁초를 접하는 일도 다반사다.

◆어린이 담뱃불 사고 이후 분연문화 정착

일본에도 과거 길거리 흡연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2002년 10월 일본 치요다구 길거리에서 한 어린이가 보행흡연자의 담뱃불에 눈을 다치면서 흡연 문화가 크게 달라졌다.

일본정부는 흡연구역과 금연구역을 나누는 분연정책을 실시했다. 거리 흡연 시 2만엔(약 2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조례가 제정됐고 공공장소를 중심으로 실외 독립형 흡연부스가 설치됐다. 건물 내에도 사업자나 시설관리자 판단에 따라 흡연공간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직장 내 흡연실을 설치할 때는 노동안전위생법에 따라 정부에서 최대 50%까지 보조금을 지급했다.


일본 거리 곳곳에 있는 보행자 금연 안내문. /사진=김설아 기자
일본 거리 곳곳에 있는 보행자 금연 안내문. /사진=김설아 기자

“흡연을 막을 수 없다면 간접흡연이라도 막자”는 판단 때문이었다. “담배는 합법적인 판매 상품이고 흡연자의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적극 반영했다. 일본은 2011년 상반기 기준 전국 212개 자치단체, 943곳에서 흡연부스를 운영 중이다. 이는 일본 전체 인구의 50%가 적용되는 수준이다.
반면 국내의 경우 흡연공간의 분리보다 금연구역 설정에 중점을 둔 상황이다. 지난해 1월 기준 서울시 실외 금연구역은 1만6984곳. 2011년 기준 25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금연공간만 늘리는 대책에 흡연자, 비흡연자 어느 한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점이다. 오히려 늘어나는 금연공간이 흡연자들을 더 거리로 내몰고 간접흡연의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통계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금연구역 확대 이후 국민의 간접 흡연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흡연자의 지옥, 그렇다고 비흡연자의 천국이 되지도 못한 국내 흡연정책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흡연구역을 늘리면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분연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병호 국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국민 권리존중을 위한 흡연공간 가이드라인 연구’에서는 “흡연공간이 격리돼야 할 혐오시설이 아니라 공동이익(Public Benefit)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라는 필요성 인식을 통해 흡연자와 혐연자 모두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분연정책 역시 이런 인식과 맞닿아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608호·6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