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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윤수희 기자 = 내년 1월1일이면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67년여 만에 형사사법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바로 해방 후 꾸준히 인정됐던 검찰 피의자신문조서(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제도가 본격 시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제도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재판이 지연되고 무죄율이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시행 초기에는 여러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측면이 더 많아 우리 형사사법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반론도 있다.
◇수사·재판 실무 크게 변화할듯
기존에는 공판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신조서는 피고인이 적법하게 자신의 진술로 작성된 것이라고 인정만 하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피고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증거로 쓸 수 없게 된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검찰이다.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하던 범죄자가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할 경우 유죄를 입증할 가장 강력한 무기가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은 공판검사를 위한 매뉴얼을 완성해 이번주에 일선 청에 배포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 수사검사를 위한 매뉴얼은 아직 미완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판검사 매뉴얼에는 Δ피고인신문·조사자 증언 활성화 Δ증거보전 절차 활용 Δ공범 진술 활용방안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검사 매뉴얼에는 Δ폭넓은 진술자들의 증언 확보 Δ영상녹화 등 기록방식의 다양화 Δ과학수사를 통한 증거확보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피고인의 마지막 입장 정리 정도에 그쳤던 피고인신문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또 2008년 도입됐지만 사문화 됐던 ‘조사자 증언제도(피의자를 조사한 경찰 등이 재판에 나와 피의자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진술을 할 때 제한적으로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 제도)가 활성화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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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2021.10.19/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
◇무죄율 증가·재판 지연될 듯
제도를 시행하는 데 있어 가장 우려되는 것이 재판 지연이다. 지금까지는 법정에서 혐의 인정을 뒤집더라도 혐의를 인정한 검찰 피신조서가 유죄의 강력한 증거가 됐다.
그러나 내년에 기소된 사건 이후부터는 법정에서 피고인신문을 통해 피고인 진술을 다시 받아내야 한다.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있는 현재의 피고인신문보다 더 자세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재판이 지금보다 길어지게 된다.
보이스피싱 등 공범이 여러 명인 사건에서 한 명의 피고인이 다른 공범의 피신조서를 부인하면 공범의 피신조서 또한 증거로 제출할 수 없게 돼 공범들에 대한 피고인신문이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재판에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재판이 길어지면 변호사비용도 늘어나 서민들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최근 변호사업계에는 ‘타임차지(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 방식이 정착되고 있는데, 재판이 지연되면 변호사가 재판에 투여한 시간도 늘어나게 돼 변호사비가 증가하게 된다.
변호사비를 정액으로 받더라도 결국 변호사가 재판이 지연될 것을 대비해 수임료를 높게 측정해 전반적인 비용이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우려 중 하나는 무죄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피의자 자백만 믿고 수사를 하거나 피의자 자백이 유일·유력한 증거인 사건의 경우 기존에는 검찰의 피신조서를 통해 유죄를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이런 방식의 입증이 힘들어져 무죄가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문제점들 때문에 검찰은 피신조서는 증거능력이 제한되더라도 피의자신문 전체를 녹화한 영상녹화물의 경우 증거능력이 인정하는 방향으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성폭력 사건이나 아동학대 등 피해자가 제대로 진술하기 어려운 범죄들은 자백을 번복하면 유죄를 입증하기 정말 어려워진다"며 "피신조서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는 게 문제라고 하면 전체 과정을 녹화해 정확성이 보장된 영상녹화물라도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게 정말 너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이 수십 시간에 달하는 피의자 신문 과정 전체를 다 봐야 하게 돼 또 다른 재판 지연을 야기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초기 혼란 있겠으나 부작용 크지 않을 듯"
우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잠시 혼란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측면이 더 많다는 반박이다.
시행 초기에는 무죄율이 높아질 수 있지만, 검찰의 수사 시스템이 새 제도에 맞춰 정비된다면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검찰의 강압적 수사 관행이 줄어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무리하게 조서를 받아봤자 재판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수사가 객관적 증거 수집 및 피해자와 제3자 등의 진술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경찰과 검찰의 피신조서의 법적 효력이 같아지기 때문에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 두 단계의 조사가 앞으로는 경찰 조사 한 단계로 간소화 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또 기존 수회에 달하는 피신조서 내용 하나하나를 피고인 측에 확인했어야 하는데, 피고인신문 한 번으로 입장을 깔끔하게 정리해 효율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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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제공)© 뉴스1 |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가 상존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행에 앞서 관련 제도의 정비와, 시행 후 면밀한 분석을 통한 문제점 해결 노력이 중요하다고 법조인들은 입을 모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도 재판에서의 실무 변화를 예측하고 검토해 매뉴얼을 정비한 뒤 기소를 하고, 법원도 변화할 실무에 대해 연구를 잘 해놓는다면 예상했던 혼란을 많이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도 "우리나라 형사사법 시스템에 현재는 굉장히 고도화 돼있어 새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앞으로 문제점들을 모니터링 해 부작용을 최소화해, 제도를 연착륙 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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