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위크’는 패션업계의 가장 큰 행사로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등을 4대 패션위크로 꼽는다. 전 세계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 모델은 여기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거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즉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주위의 모든 것을 이용한다.
얼마 전 끝난 2022 F/W 파리패션위크에선 발렌시아가의 패션쇼가 속칭 ‘찢었다’ 할 정도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래퍼 칸예 웨스트와 3조원의 재산분할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킴 카다시안이 발렌시아가의 노란색 박스테이프를 온몸에 휘감고 나타난 것도 화재였지만 더욱 화제가 된 것은 환경파괴·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패션쇼와 우크라이나 국기를 모티브로 만든 피날레 의상이었다.
발렌시아가의 모델은 마치 자연재해를 피해 떠나는 난민처럼 검은 비닐백을 들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직경 60m의 원형 무대를 돌았다. 유리창 너머의 관람객이 추위를 느낄 정도로 현실적인 눈보라에 모델은 정상적인 워킹조차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이들의 움츠린 어깨와 허리로 인해 패션쇼의 주제는 더욱 부각됐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관심을 받은 것은 피날레를 장식한 두 의상, 남자가 입은 노란색 운동복과 여자가 입은 하늘색 원피스였다. 이는 우크라이나 국기의 파란색과 노란색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들은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가 패션쇼 직전 급하게 제작한 것이었다.

발렌시아가 '360° Show Winter 22 Collection' /사진=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캡처
발렌시아가 '360° Show Winter 22 Collection' /사진=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캡처



패션쇼에 휘날린 우크라이나 국기

그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사라진 그루지야(현 조지아) 출신으로 당시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몇 년간 난민 생활을 하다 프랑스로 넘어온 경험이 있기에 이 사건을 묵과할 수 없었다. 국가 간 전쟁이란 거대서사 앞에서 일개 패션 브랜드에 불과한 벨렌시아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발렌시아가가 굴곡진 역사를 딛고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과거를 버리고 현재의 우리, 우리 주변의 현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창업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어린 시절 귀족의 옷을 수선하다 재능을 인정받아 쿠튀리에(couturier, 수석 재단사)가 됐는데 샤넬, 디올이 유행을 만들어 사람이 따르게 한다면 발렌시아가는 사람에 맞춰 유행을 만든다며 ‘디자이너 위의 디자이너’라 불렸다. 하지만 귀족적이고 장인적인 성향 탓에 패션위크의 메인이 오트쿠튀르에서 프레타포르테로 넘어가자 1968년 패션계를 떠났고 그가 떠난 발렌시아가는 ‘향수가 없었으면 진작에 망했을 브랜드’라 불릴 정도로 쇠락했다.
명맥만 유지하던 발렌시아가를 되살린 것은 1996년 26세의 나이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니콜라 제스키에르였다. 당시 제스키에르는 망한 브랜드의 책임자는 되지 말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이름밖에 남지 않았기에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며 디렉터 직을 맡았다. 4주만에 선보인 그의 패션쇼는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발렌시아가의 이름으로 시도할 수 있었다. 90년대를 휩쓴 ‘모터백’도 그렇게 등장한 제품이었다.
발렌시아가가 구찌에 인수되고 제스키에르가 루이비통으로 떠난 후 잠시 침체됐던 발렌시아가는 2015년 뎀나 바잘리아가 디렉터로 오면서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뎀나 바잘리아는 실험적 패션으로 유명한 ‘베트멍’의 창업자로 현대 미술을 패션에 접목해 성공한 디자이너다. 일반 기성복과 비슷하지만 바디나 소매 등을 비정상적으로 키운 오버사이징이 트레이트마크다. 오트쿠튀르에 미국 갱스타일의 스트릿 패션을 유행시키거나 스피드 트레이너, 트리플S 같은 고가의 운동화를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키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을 이용해 자사의 컬랙션을 홍보함으로써 대중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바잘리아는 전통의 해체, 비주류에 대한 재조명 같은 지금 현재 우리와의 소통을 통해 자신만의 패션을 완성해 가고 있으며 이번 2022 F/W 패션쇼도 현시대와 함께 하려는 노력을 통해 빛을 발한 사례다.

우크라이나 국기 상단 파란색을 상징하는 원피스 /사진=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캡처
우크라이나 국기 상단 파란색을 상징하는 원피스 /사진=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캡처
우크라이나 국기 하단 노란색을 상징하는 운동복 /사진=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캡처
우크라이나 국기 하단 노란색을 상징하는 운동복 /사진=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캡처


자기검열에 안주하는 한 자유는 없다

발렌시아가의 패션쇼는 감동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서울패션위크에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패션쇼를 선보일 수 있을까. 이를 막는 규제나 제제가 없으니 굳이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기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남자와 여자, 부자와 빈자 간 대립 속에서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조차 껄끄러운데 국가 간 전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고선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어느 디자이너가 용기를 내 정치적 디자인을 기획하더라도 오너가 그 디자인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막힐 공산이 크다. 소위 ‘윗분’의 의향을 생각지 못했다가 날아가버린 기업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패션쇼를 패션쇼로만 평가하는 것에 낯설다. 패션쇼만의 일이 아니다. 버스정류장에 쥐박이를 그렸다는 이유로 대학 강사가 강단에서 쫓겨난 것이 불과 10여년 전 일이다. 누군가는 발렌시아가의 이번 패션쇼를 정치적 상술이라 비난할 수도 있지만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정도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 이를 허용하고 뒷일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문화가 여기가 아닌 바다 너머 저 먼 대륙에 있다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있어 분명 부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