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 참 크다. 이곳에서는 공사 기간이라면 600년, 향수로는 목욕 정도 해 줘야 명함 좀 내민다. 기차역에서 바로 보이는 대성당 첨탑이 여행자의 발목을 붙잡는 곳, 이 도시 쾰른에게 성별이 있다면 ‘상남자’가 아닐까.

 

쾰른대성당 첨탑
쾰른대성당 첨탑
◆‘위엄’이란 이런 것

고개가 뒤로 한없이 꺾인다. 첨탑의 높이가 157m, 인력으로 지은 건축물 중 가장 높은 성당이고, 유럽에서는 울름 대성당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성당이라고 한다. 사진 찍기도 어렵다. 첨탑도 높고 중앙역에 바짝 붙어 있어 충분한 거리 확보가 어렵다. 심지어 역에서 나올 필요 없이 기차 환승 중에 잠시 고개를 내밀면 성당 첨탑이 보인다. 덕분에 찾아가기 어려울 게 없으니 ‘길치’에게 좋은 여행지이다.

자그마치 600년. 1248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880년에 완성한 성당이다. 고딕양식이지만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시대를 다 거쳤다. 고딕의 설계로 근대인이 완성한 성당이기도 하다. 재정적인 문제로 300년 동안이나 건설이 중단됐고, 아직까지도 보수가 이뤄지고 있다. 2차 대전 때는 쾰른이 어디인지 구별하기 위해 이 성당만 남기고 주변을 폭탄으로 쓸어 버렸다고 하니 참 비극적인 이유로 랜드마크 역할을 한 셈이다.

얼핏 보면 그리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전체적으로 뾰족하고 시커먼, 높기만 한 녹슨 철제 건물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그런 게 아니고 2차 대전의 폭격과 쾰른의 자동차 매연 때문이라고 하니, 이 사실을 감안하고 세심히 살펴본다. 세상에! 그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고딕양식 특유의 자로 잰 듯 정확한 설계와 섬세한 디테일이 기막힌 조화를 이뤘다. 문에 있는 사도들의 입상과 조각들만으로도 성경 한편을 다 읽은 듯하다. 그렇지, 세계적 문화유산을 그리 간단히 판단해서는 될 게 아니었다. 조금 겸손해진 마음으로 대성당에 들어간다.




입이 절로 벌어지는 곳, 쾰른
입이 절로 벌어지는 곳, 쾰른
◆디테일을 즐겨라

성당 내부는 생각보다 환하다. 검은 외관을 보고 섣불리 판단했던 탓이다. 밖에서 봤을 때보다 창문도 많다. 창문마다 선이 굵고 강한 느낌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상쾌한 느낌을 준다. 이는 고딕양식과 함께 발달하기 시작했다. 고딕양식으로 기둥 사이의 두꺼운 벽이 필요 없어졌고, 벽에 큰 창을 낼 수 있게 됐다. 한편 가톨릭 성경이 라틴어라 일반 성도들이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자, 성경의 내용을 창에 그려 장식도 하고 무지한 백성을 교육하는 역할도 한 것이다. 쾰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중에는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가 기증한 것이 있어 여행자들은 이를 찾기 위해 창문을 두리번거리곤 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동방박사 유골함이다. 이것이 바로 쾰른 대성당 탄생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신성로마제국 시절, 이탈리아 원정에서 동방박사의 유골함을 가져왔는데, 이를 보기 위해 엄청난 숫자의 순례자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큰 성당이 필요했고, 그렇게 쾰른 성당 공사가 시작됐다. 동방박사 유골함뿐 아니라 쾰른 대성당 안에는 여러 성인들의 무덤이 많이 있다. 한쪽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재실에 성인들을 나눠 모셨다. 이에 따라 바닥의 모자이크도 화려하다. 사실 독일의, 그것도 고딕양식의 건축물에 ‘화려함’을 말하는 것이 다소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다. 외관이 주는 ‘검고 뾰족한’ 느낌 때문일까. 일종의 반전 효과다.

또 다른 자랑거리는 앞쪽의 성가대석이다. 참나무를 이용해 3년이나 걸려 만들었다고 하는데 독일에서 가장 큰 성가대석이다. 문화유산 보존의 이유로 섬세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가대석의 벽화와 꽃잎 조각은 별도의 투어를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다.

뷰포인트를 찾는다면 남쪽 탑으로 올라가 보자. 어마어마한 높이를 자랑하는 성당이니 오르기 전에 심호흡하고 무릎 관절 한번쯤 돌려줘야 할 것이다.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는 곳인데, 그만한 보람이 있다. 라인강과 쾰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다음 방문지를 정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신성로마제국 유물
신성로마제국 유물
◆쾰른, 10인 10색

쾰른에는 3대 명물이 있다. 쾰른 대성당과 4711향수, 퀼시 맥주가 그것이다.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4711향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쾰른 성당의 수도사가 처음 이것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상품화 시킨 사람은 은행가다. 프랑스의 쾰른 점령 시 도시계획이 이뤄졌고 이때 향수를 팔던 집의 번지수가 4711, 그대로 향수의 이름이 됐다. 프랑스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이것을 기념으로 사갔고 그들은 이를 ‘쾰른의 물’이라 불렀다. 나폴레옹이 이것으로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물’이라 생각하니 과장이 아닌 듯도 하다. 흔히 목욕 후 가볍게 바르는 향수를 ‘샤워코롱’이라 하는데 그 말의 근원도 여기에서 왔다고 한다. 포장지에도 ‘오 드 콜론느’(Eau de Cologne)라고 쓰여 있으니, 말 그대로 쾰른의 명'물'인 셈이다. 4711 상점에 가면 구식 수도꼭지에서 바로 이 ‘쾰른의 물’이 정말 물처럼 흐르고 있다.

쾰른에는 박물관이 30개가 넘는다. 독일의 가장 오래된 도시인 만큼 세월과 함께 한 볼거리가 많다. 특히 초콜릿 박물관이 여행자들에게 인기다. 라인강변을 산책하다가 보면 유리로 된 범선 한대를 발견하는데 이곳이 바로 초콜릿 박물관이다. 60여종의 열대나무와 초콜릿의 역사, 옛날 광고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있고 3m가 넘는 초콜릿 분수는 이곳의 자랑이다. 분수에서 솟는 초콜릿을 와플에 찍어 주는데 이곳에 오면 꼭 맛봐야 한다.

동아시아 박물관은 또 다른 의미다. 1909년 아돌프 피셔(Adolf Fischer)가 설립했고, 한국, 중국, 일본의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 귀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어 타국에서 만나는 한국의 문화재가 묘한 느낌을 준다. 더불어 우리 보물 반환에 대한 상념들로 생각이 많아지는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호엔졸라른(Hohenzollern) 다리를 건너본다. 철제 난간에는 자물쇠 서약이 가득하다. 해가 기울 때쯤 푸른빛으로 어두워지는 대성당의 첨탑이 이들과 왠지 모를 엄숙한 조화를 이룬다. 600년 만에 완성된 성당, 300년 전부터 그저 ‘물’이라 불렸던 향수, 저마다 역사를 간직한 박물관들…. 쾰른은 관심갖는 만큼 깊어지고 아는 만큼 보이는, 양파 같은 매력의 역사 도시다.


한국에서 독일·쾰른 가기
한국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루프트한자 등 독일행 직항 비행기가 있지만 쾰른으로의 직항은 없다. 쾰른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쾰른 가기]
항공: 프랑크푸르트에서 쾰른·본 공항까지 비행기 탑승 후 (1시간 정도 소요) 170번 버스로 환 승하고 쾰른에서 하차(20분)
기차: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기차 탑승, 쾰른역 하차(2시간 30분)
독일 철도 사이트: http://www.bahn.com

● 여행정보
쾰른 대성당
http://www.koelner-dom.de
미사 시간에는 입장이 제한되며 입장료는 없고 기부금을 받는다.
탑에 오를 땐 별도의 입장료가 필요하다: 성인 3유로 / 학생 1.5유로 / 가족티켓 6유로
문의전화: 0049 (0)221 17940 100

파리나하우스
http://www.farina.eu
300년 향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원래는 향수를 만들던 공장이었다고 하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파리나는 처음 향수를 팔기 시작해 8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집안의 이름이다. 영어 해설을 들을 수 있으며 예약제로 운영한다.
문의전화: 0049 (0)221 294 1709

쾰른 초콜릿 박물관
http://www.schokoladenmuseum.de/
월요일 휴관

본(Bonn)
쾰른과 불과 15㎞ 떨어져 있고 쾰른과 같은 공항권이다. 통일 전까지 독일의 수도였으니 가볼 만하다. 베토벤이 태어난 도시이기도 하다.

< 음식 >
퀼시 맥주(Koelsch): 맥주로 유명한 독일에서도 쾰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 지역 맥주다. 다른 곳 맥주와 달리 200ml 얇은 잔에 서빙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Brauhaus-Sion: 퀼시 맥주와 슈바이젠 학센(독일식 족발 요리)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집이다.
http://brauhaussion.de / 문의전화: 0049 (0)221 2578540

< 숙소 >
쾰른 민박 하우스: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이다. 언어의 불편함 없이 여행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무료 픽업 서비스, 무료 전화 통화 등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조식은 한식과 독일식 중 무료로 제공되고, 저렴한 가격으로 한식 저녁도 즐길 수 있다. http://cologneminbak.com / 문의전화: 0049 (0)221 430 8852

쾰른 도이츠 유스호스텔: 유스호스텔 회원가입만 하면 가격대비 좋은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4인 가족룸이 있어 예약이 언제나 밀려 있는 곳이다.
http://koeln-deutz.jugendherberge.de / 문의전화: 0049 (0)221 814711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