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매장. 주말만 되면 이곳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30분 넘게 줄을 서야 원하는 물건을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다. 유통업계에 불어 닥친 매서운 경기 한파도 이곳에선 우스운 소리. 무려 8조원, 세계 매출 1위로 부상한 국내 면세점 이야기다.

이 엄청난 시장에 대목이 열린다. 면세점사업은 크게 공항과 시내로 양분화 되는데, 인천국제공항과 서울·제주 등 시내 면세점에서 잇따라 새 사업자를 뽑게 된 것. 특히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허가는 지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유일하게 불황도 빗겨간 사업인 만큼 눈독 들이는 업체가 많다.

국내 면세점업계 양대 산맥인 롯데호텔과 호텔신라를 비롯해 서울에 면세점이 없는 신세계와 한화갤러리아 등 후발주자들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면세점사업. 그 운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쩐의 전쟁’ 서막이 올랐다.


 

인천공항 면세점 /사진=머니투데이DB
인천공항 면세점 /사진=머니투데이DB

◆ 상징성·자리값 높은 인천공항

우선 오는 2월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을 두고 업체 간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8조원 규모의 면세시장 중 4분의 1가량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편. 현재 롯데면세점(매장 면적 5519㎡)과 신라면세점(7597㎡), 한국관광공사(2535㎡)가 나눠 맡고 있다.

공항공사는 면세점 12구역 중 8개 구역을 대기업이 복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일반구역으로 구분하고, 나머지 4구역을 복수입찰이 불가능한 중소·중견기업 구역으로 구분해 입찰을 진행할 방침이다. 오는 29일까지 신청을 받아 2월에는 신규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한 사업자가 최대 4개 권역까지 차지할 수 있다.

대기업에 할당된 8개 구역은 화장품·향수(2구역), 주류·담배(2구역), 럭셔리패션(1구역), 패션잡화(2구역), 기타(1구역)로 구분됐다. 기존 사업자인 롯데와 신라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재입점에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노른자 구역을 확보하기 위한 시나리오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다. 유리한 권역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는 한편 매출도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 업체는 독과점 문제로 시내 면세점 입찰에서는 밀릴 가능성이 커 인천공항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의 의지도 만만치 않다. 신세계나 한화갤러리아, 워커힐 등도 면세점사업 확대를 위해 공항 입점을 놓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면세점 제2롯데월드 롯데월드몰 /사진=뉴시스 조수정 기자
롯데면세점 제2롯데월드 롯데월드몰 /사진=뉴시스 조수정 기자

중소·중견기업 구역이 생기면서 이곳을 노리는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할 전망이다. 한식당 '경복궁'을 운영하는 엔타스와 대구 그랜드호텔, 오래전부터 공항 진출을 준비한 하나투어 등이 입찰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면세점 운영 노하우가 있는 듀티프리코리아와 킹프리 등 외국계 회사도 경쟁 대열에 속속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경쟁률이 높은 만큼 임대료는 상상 이상이다. 공항공사 측이 제시한 최소 입찰금액은 7080억원. 단위 면적으로 환산하면 3.3㎡(구 1평)당 1억3444만원이다. 지난해 기존 면세점 사업자 3곳이 낸 임대료 6150억원보다 15% 늘어난 금액이다.

그마저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매년 2%씩 오른다.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5년간 운영권을 보장받는데 임대료로만 수조원을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사업권을 따낸다고 해도 영업비용 등을 빼면 사실상 적자를 볼 가능성이 크다. 기존 사업자인 롯데와 신라 역시 총 매출의 30%를 임대료로 지불하면서 매년 200억원 내외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되레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여러 기업이 공항 입점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이곳에서 수익을 내보겠다는 것은 나중 문제”라며 “공항 면세점이라는 상징성, 해외진출 가능성, 브랜드 이미지 향상 등 배경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호텔신라면세점 인천공항점 패션몰(사진=사진제공 호텔신라)
▲호텔신라면세점 인천공항점 패션몰(사진=사진제공 호텔신라)

◆ 대기업 총출동… 자리싸움 치열

이런 이유로 ‘진짜 알짜’는 임대료 부담이 낮은 시내면세점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항면세점이 적자를 보는 데 반해 시내면세점 매출은 매년 10%씩 성장하고 있어서다.

현재 국내에 있는 시내 면세점 현황을 보면 서울 6개, 부산 2개, 제주 2개 등을 포함해 총 17개. 정부는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해 서울에 2개, 부산과 제주에 각 1개씩 시내 면세점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업계가 가장 눈독 들이는 지역은 단연 서울. ‘수도권 프리미엄’이 붙어 외국인관광객의 활용도가 높은데다 지난 15년간 면세점 신규 허가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축적된 수요를 흡수할 수 있어서다.

당초에는 중소·중견기업에만 시내 면세점 진출 기회를 줄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면세점의 경쟁력 향상 차원에서 대기업 입찰참여도 사실상 허용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대기업군에서는 신세계·한화갤러리아·워커힐 등 후발주자가 모두 나설 전망이다. 다만 기존 사업자인 롯데와 신라의 참여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간 면세점사업을 하지 않았던 서울시 산하기업인 서울관광마케팅과 현대백화점그룹 등 신규 사업자도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점업계 한 관계자는 “면세사업 자체가 특허권이고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어 어느 지역이 나오든 자본력 있는 기업들은 무조건 들어가려고 할 것”이라며 “경기불황이 지속되는 현 시점에 면세점만큼 신성장동력으로 삼기 좋은 것도 없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