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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내곡4단지 입주예정자 대표 |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더니…. 현대엔지니어링이 기존에 분양한 아파트단지의 입주민을 무시하는 행태가 딱 그거네요. 누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싶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분양받지 않았을 겁니다.”(서울 서초 내곡4단지 한 입주예정자)
현대엠코를 흡수하며 주택사업에서 도약을 꿈꾸는 현대엔지니링이 ‘힐스테이트’ 브랜드 때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기존에 현대엠코가 분양한 아파트단지들이 브랜드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이달 입주를 앞둔 내곡4단지는 입주예정자들과 현대엔지니어링 사이의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곡4단지는 현대엠코가 지난 2013년 7월 분양한 아파트단지로 전체 256가구로 구성됐다. 현대엠코는 분양 당시 내곡4단지의 단지명을 '현대 엠코타운 젠트리스'로 정했다.
문제는 지난 4월 현대엠코가 현대엔지니어링에 합병되면서 신규 분양아파트에 현대건설의 아파트브랜드 ‘힐스테이트’를 사용키로 하면서 발생했다. 앞으로 분양되는 아파트는 인지도 높은 ‘힐스테이트’를 사용하면서 기존에 ‘엠코타운’으로 분양된 아파트에는 브랜드 교체를 허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 화근이었다. 내곡4단지도 여기에 해당됐고, 불만이 폭발하기까지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엠코타운’ 브랜드가 사라짐에 따라 투자가치 하락을 우려한 입주예정자들이 들고 일어선 것.
◆'힐스테이트' 사용료, 입주자가 부담?
지난해 12월1일, 내곡4단지의 입주예정자 대표 4명은 현대엔지니어링 본사를 찾았다. ‘힐스테이트’ 브랜드 사용을 요구하는 항의 방문이었다. 하지만 이날 현대엔지니어링은 ‘불가’ 입장을 고수했고 양측은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민경한 내곡4단지 입주예정자 대표는 “아직 아파트 외벽 등에 로고도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예정자 80% 이상의 동의까지 받아 브랜드 변경을 요청했다”며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은 ‘엠코타운’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무책임한 말만 반복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엔지니어링도 답답한 심정을 호소했다.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현대건설에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입주예정자들의 뜻에 따라 단순하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은 아직까지 브랜드 사용 수수료율 등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브랜드 사용 수수료는 총 분양가의 0.2% 정도로 책정하는 것이 업계 관례다. 이 경우 현대엔지니어링은 내곡4단지 ‘엠코타운 젠트리스’를 ‘힐스테이트’로 바꾸는 데 가구당 수백만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물어야 할 상황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내곡4단지 입주예정자들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대엔지니어링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며 '갑의 횡포'를 부린다고 지적한다.
민 대표는 “방문 당시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힐스테이트로 변경하려면 로고 제작비와 가구당 수백만원에 달하는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며 입주자들에게 브랜드 로열티를 요구했다”면서 “한마디 상의없이 브랜드를 단종시켜 놓고 그 책임을 입주자들에게만 묻는 것은 대기업의 횡포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내곡4단지 입주예정자들과 마주했던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기본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이 비용을 지불해야 할 책임은 없다”고 일축했다.
전문가들은 진퇴양난에 빠진 현대엔지니어링의 입장도 이해되지만 내곡4단지 입주예정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는 “브랜드가 집값에 끼치는 영향이 적잖은 만큼 이처럼 브랜드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대다수 건설사는 그 요구를 들어줬다”며 “법적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이 브랜드를 바꿔줘야 할 책임이 없지만 회사 이미지와 고객관리 차원에서라도 입주예정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사라진 '엠코' 브랜드 고집하는 시공사
일련의 상황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최근 현대엔지니어링이 주택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합병 시너지 효과를 한껏 발휘하고 있어서다.
올해도 현대엔지니어링은 약 1만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합병 전 현대엠코의 주택공급량인 5340가구보다 2배 가까이 불어난 수치다. 이 같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주택사업 확장은 합병 후 자금력이 풍부해진 데다 신용도가 한단계 상향 조정되면서 PF대출 과정에서도 덕을 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한가지 더 있다. 바로 ‘힐스테이트’ 브랜드 사용으로 높아진 인지도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선보인 ‘힐스테이트서리풀’(서초)과 광주시 남구 ‘백운동힐스테이트’(광주), ‘힐스테이트강동’(울산) 등은 모두 1순위에서 청약을 마감했고, ‘힐스테이트서천매미산’(용인)도 순위 내 청약을 마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지난해 12월3일 청약에 나서 평균 20대 1과 최고 128대 1로 1순위 마감된 ‘힐스테이트광교’는 계약 시작 불과 4일 만에 100% 계약을 마감했다.
이처럼 ‘힐스테이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현대엔지니어링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 내곡4단지처럼 기존에 엠코타운으로 분양한 아파트단지 중 아직 입주가 완료되지 않은 단지를 중심으로 브랜드 변경을 요구하는 입주예정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엔지니어링의 방침은 지난 9월 이후 신규 분양한 아파트단지에만 힐스테이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에 따르면 지난 9월 이전에 분양한 단지 중 아직 입주를 하지 않은 아파트는 총 10여개, 7700여가구에 달한다. 만약 이들 모두가 내곡4단지처럼 브랜드 변경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회사 경영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