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년 동안 엘리트 교복 대리점을 운영한 점주 A씨. A씨는 지난해 여름 본사로부터 내용증명 한장을 받았다. 더 이상 재계약할 의사가 없다는 대리점 계약 해지통보였다. 재계약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회사 측은 그동안의 미수금을 갚으라며 A씨가 평생 모은 돈으로 마련한 아파트까지 담보로 잡고 있는 상황. A씨는 “5개월이 지나도록 담보설정을 풀어주지 않아 고통스럽다”며 “본사에서 아직도 내용증명을 보내 협박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교복업계 1위, 엘리트의 '갑질'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교복 대리점 30여곳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이 발단이다. A씨를 포함한 대리점주들은 본사의 부당한 횡포라고 주장한다. ‘엘리트학생복 대리점협의회’를 만들어 반품요구 등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게 화근이 됐다는 것. 반면 본사 측은 “대리점들이 다른 교복브랜드를 만들어 해지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엘리트 교복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사건은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엘리트 대리점주들은 전국적인 협의회를 만들었다. 본사의 부당행위를 개선해 좋은 거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대리점주들은 우선 "반품을 받아달라"고 요구했다. 본사가 팔다 남은 교복은 물론 불량품마저도 받아주지 않는 등 횡포를 일삼았다는 것. 심지어 본사에서 임의로 변경한 디자인을 학교 측이 문제삼아 팔지 못하게 됐음에도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게 대리점주들의 주장이다.

 
/자료사진=머니투데이 DB
/자료사진=머니투데이 DB

◆ 대리점들 “무조건 기어야 산다”

반품비용은 고스란히 개인의 빚으로 남았다. 팔 수 없는 신상품은 곧바로 재고가 됐고, 대리점주들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르는 빚을 떠앉고 살아야 했다. 본사에 사정을 얘기해보고 협상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답답함을 느낀 일부 대리점주들은 본사에 항의했다. 처음 본사 측은 협상을 시도하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뒤로는 대리점 포기각서를 요구하며 점주들을 압박했고 결국 눈엣가시였던 대리점 29곳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일부 대리점주들은 이 과정에서 총판 사장과 직원으로부터 협박도 받았다. 협의회에 참가했던 한 대리점주는 총판 직원으로부터 “마지막 경고다. 가만두지 않겠다. (총판)사장님한테 무릎 꿇고 빌어라”라는 통보를 받았고, 또 다른 대리점주는 총판 사장으로부터 반말과 욕설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다. 심지어 대리점들은 총판직원들의 술값과 유흥업소 2차 비용을 지불하는 등 접대도 수시로 해야 했다.

대리점주들은 이런 횡포가 가능했던 이유로 ‘짧은 계약기간 1년’을 꼽았다. 엘리트 본사와 매년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선 본사에게 잘 보여야 하고 조금이라도 밉보였을 경우 일부러 불량품을 보낸다거나 제품을 늦게 보내는 등의 보복이 가해졌다는 것이다.

엘리트 측은 또 원가절감을 이유로 생산 공장을 개성공단으로 이전하면서 기존에 교복을 생산하던 봉제공장들과의 계약도 해지했다. 결국 엘리트에 버림받은 대리점과 공장은 ‘교복 조합’을 결성해 직접 교복을 팔기로 했다.

공장에서 납품받아 바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구조로 바뀌니 가격 경쟁력이 생겼고, 싼 가격 때문에 국·공립학교에서 처음 실시한 학교 주관구매 입찰도 따냈다.

그러자 엘리트 본사는 바로 옆에 또 다른 대리점을 낸 뒤 지난해 26만원에 판매했던 교복가격을 교복 조합 가격에 맞춰 17만원선으로 내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학교 앞 학생들을 대상으로 브랜드 홍보에도 나섰다. 본사 측은 학생들에게 “입찰 받은 교복 대신 물려 입기를 하라”고 편법을 가르친 뒤 엘리트 대리점에 와서 교복을 사라고 꼬드겼다.

/사진=뉴스1 허경 기자
/사진=뉴스1 허경 기자

◆ 본사 “대리점이 먼저 배신”

엘리트는 계약해지 배경이 대리점들의 주장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학교주관구매(교복의 상한가를 정해 두고 각급학교가 입찰경쟁을 통해 1개의 업체를 선정한 후 일괄 구매하는 방식) 시행으로 가격의 부담을 느낀 일부 대리점들이 본사를 먼저 배신했다는 것.

엘리트 본사 한 관계자는 “지난해 5월 대리점 100여개가 모여 교복 협동조합을 만들었다”며 “엘리트와 계약관계에 있으면서도 다른 교복브랜드를 만들어 계약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70개의 대리점 중 40여개의 대리점은 본사 측의 설득으로 입장을 선회했고 나머지 입장을 고수한 30여개의 대리점에게 한달 전 계약해지 통보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판 사장과 직원의 협박과 접대 요구에 대해서는 “발생경위 및 사실을 확인 중에 있으며, 접대 요구 등의 내용은 해당 직원이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반품비용 떠넘기기에 대해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별로 고유 디자인이 달라 통상 대리점이 그에 맞는 디자인이나 물량 등을 정해 본사에 주문을 하기 때문에, 본사의 강압적 요구가 있을 수 없다”며 “일부 문제가 됐던 제품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수선할 수 있는 기계를 지급하거나 본사가 받아 수선을 해주는 등 나름의 보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복 구매 제도가 바뀌면서 일부 대리점들이 혼란을 느껴 발생한 부분이라고 보고 있다”며 “(17만원으로 가격을 내린 것은) 사실상 학교주관구매가 실시되면 한 업체만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대리점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진 손실까지 보면서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교복업체들의 횡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 배경으로 교복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꼽았다. 입학과 하복 철에만 반짝하는 ‘두철’ 장사이다 보니 업체들이 필사적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다는 것. 자연히 해마다 교복가격이 인상되고 밀어내기 횡포, 대형업체들 간의 담합 등이 문제화 된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교복시장은 연간 약 6000억원 규모로 대형업체들이 85%가량을 장악하고 있다”며 “가격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완전경쟁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대리점이 피해를 보고 이 같은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