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길이 5.8km. 시청이 있는 서울 도심에서 성동구 마장동까지 신호를 하나도 받지 않고 내달릴 수 있는 청계고가가 1976년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하늘 위로 길이 열렸다"며 환호했다.
가난했던 시절, 가난한 나라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고가도로를 올린 이유는 교통난 완화였다. 청계고가는 서울의 골칫거리인 교통난을 해소해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서울의 발전을 알리는 '근대화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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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 DB |
◆고가 밑 '사람 사는' 세상
청계고가도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더 남달랐다. ▲1960~70년대 개발의 상징물 ▲수많은 고가 건설의 시발점 ▲서울 도심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핵심 축 등 서울을 대표하는 도로로 자리매김했다.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청계 2~3가 상가부터 펼쳐지는 고가 밑 세상. 공구용품과 헌책, 헌옷부터 세운상가 전자제품, 고가구와 골동품까지 3평 남짓한 점포들이 빼곡히 들어섰던 이곳은 도심형 산업의 생명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마음만 먹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곳에선 안 팔고 못 사는 게 없었다.
사라지기 전, 청계고가가 만든 풍경은 이랬다. 신시대 문명이었고 수십년간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 됐으며 중장년층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그러나 이 현대화의 상징은 시간이 흘러 대도시 슬럼의 상징처럼 변해버렸고 지난 2003년 7월 청계천 복원공사 진행과 더불어 우리 눈앞에서 영영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젊은 시절의 추억 한조각을 잃은 것 같다", "역사가 사라진다"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반면 상가전체를 가로막던 고가도로가 사라지면 자신들의 머리 위에 햇살이 비출 것이라 내심 기대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버팀목 쓰러지고 사람 발길 '뚝'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청계천은 확 달라졌다. 콘크리트 고가다리가 완벽하게 뜯기고 새 물이 흐르고 있다. 이곳을 터전으로 살던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매서운 겨울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6일 오후. 동대문 청계상가 주변 헌책방 거리엔 20여명의 상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평 남짓한 점포 사방에는 빈틈없이 쌓아놓은 헌책들로 빼곡했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점포 앞까지 모두 책에게 자리를 내준 상황. 추운 날씨 탓인지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책을 둘러보고 가는 노인 한두명이 전부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50여곳의 서점이 밀집해 책을 사려는 학생들로 가득했다는 게 상인들의 말이다. 헌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려는 학생과 학부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것.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서점들이 대형화되고 헌책방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든든한 버팀목이던 청계고가가 사라진 이후로는 더하다. 대중교통이 거의 끊기다시피 하면서 사람들로 넘쳤던 공간은 수만권의 책이 대신하고 있다.
38년 전부터 이곳에서 헌책방을 운영한 조경애씨(60)는 "한때 잘나갈 때는 입구에 사람이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붐볐다"며 "고가가 사라진 이후 공기는 확실히 좋아졌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하루에 한두권도 못 파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변 점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헌책과 잡화를 판매하는 김정심씨(66)는 "고가도로가 있을 때는 이 주변으로 버스도 몇대 서고 자동차 왕래도 많았는데 이제는 이곳에 점포가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며 "하루하루 버티고는 있는데 장사가 너무 안돼 벅차다"고 털어놨다.
서울 하늘 아래 둘째가라면 서러운 서민들의 시장. 그러나 지금의 헌책방 거리에서는 활기 띤 모습이나 상인들의 열기를 느낄 수 없다. '인파로 가득 찬 사람냄새 가득한 거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나씩 잘게 잘려 나가던 청계고가, 잘 나가던 그때를 회상하는 상인들의 눈동자.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하기 힘든 삶의 애환, 그리고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남아있을 뿐이다.
"젊은이들 찾는 헌책방 골목 됐으면…"
[인터뷰] 현만수 한국서점연합회 평화지구 회장
벌써 26년이 흘렀다. 현만수 한국서점연합회 평화지구 회장(69)이 동대문 평화시장 내 3평 남짓한 점포에 터를 잡은지도…. 현 회장은 '헌책방 골목'의 활성화를 위해 13년째 한국서점연합회 평화지구 회장을 맡고 있다. 그에게 과거와 현재, 청계상가 상인으로서의 애환을 들어봤다.
- 고가도로가 철거되기 전과 후 어떻게 달라졌나.
"전과 비교하면 환경은 좋아졌어요. 시야도 탁 트이고 매연을 직접 맡지 않으니 공기도 훨씬 좋고요. 반면 영업은 고가철거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에요. 수익이 절반 이상 줄었죠. 경기도 안 좋은 데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이곳에 헌책방이 있는지도 모르는 젊은이가 많으니까요."
- 고가도로 철거 당시 상황은?
"반대시위를 했었죠. '생존권 보장 없는 청계천 복원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와 차도에 어지럽게 주차된 화물트럭이 즐비했어요. 대중교통망이 감소하니 손님이 줄 것이고 공사기간 동안 장사를 못하는 문제도 있고. 먼지와 소음 때문에 영업이 아예 안됐으니까요."
- 결론적으로 당시 예상이 적중했다고 보는데.
"그렇죠. 환경은 좋아졌어도 버스노선이 대폭 줄었어요. 그때만 해도 5~6개는 됐는데 지금은 1개뿐이에요. 당시에는 이동인구가 많았는데 요즘은 지하철 손님 외에는 찾기가 힘들죠. 하루에 20~30명 보기도 어려울 정도예요."
- 연합회장으로서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헌책방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에요. 국가적 차원에서도 헌책방은 보존가치가 있고요. 출판업계가 톱니바퀴처럼 돌아야 서로 상생하고 새 문화가 형성된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젊은이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줬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현만수 한국서점연합회 평화지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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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
- 고가도로가 철거되기 전과 후 어떻게 달라졌나.
"전과 비교하면 환경은 좋아졌어요. 시야도 탁 트이고 매연을 직접 맡지 않으니 공기도 훨씬 좋고요. 반면 영업은 고가철거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에요. 수익이 절반 이상 줄었죠. 경기도 안 좋은 데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이곳에 헌책방이 있는지도 모르는 젊은이가 많으니까요."
- 고가도로 철거 당시 상황은?
"반대시위를 했었죠. '생존권 보장 없는 청계천 복원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와 차도에 어지럽게 주차된 화물트럭이 즐비했어요. 대중교통망이 감소하니 손님이 줄 것이고 공사기간 동안 장사를 못하는 문제도 있고. 먼지와 소음 때문에 영업이 아예 안됐으니까요."
- 결론적으로 당시 예상이 적중했다고 보는데.
"그렇죠. 환경은 좋아졌어도 버스노선이 대폭 줄었어요. 그때만 해도 5~6개는 됐는데 지금은 1개뿐이에요. 당시에는 이동인구가 많았는데 요즘은 지하철 손님 외에는 찾기가 힘들죠. 하루에 20~30명 보기도 어려울 정도예요."
- 연합회장으로서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헌책방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에요. 국가적 차원에서도 헌책방은 보존가치가 있고요. 출판업계가 톱니바퀴처럼 돌아야 서로 상생하고 새 문화가 형성된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젊은이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줬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