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스만(SM6)은 국내시장에서 르노삼성을 SM520 시절의 위치로 끌어올릴 만한 잠재력을 가진 모델이라고 감히 평가합니다.” 지난해 11월 박동훈 르노삼성자동차 부사장이 기자들 앞에서 오는 3월 출시 예정인 SM6를 두고 했던 말이다.
내수시장에서 수년째 어려움을 겪는 르노삼성은 ‘신모델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 르노의 클리오 등 소형차나 QM3와 QM5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SUV 카자르를 도입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부산공장서 위탁생산 중인 닛산 로그가 르노삼성을 통해 판매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르노삼성의 선택은 ‘탈리스만’이라는 중형 세단이었다. 어찌보면 ‘아집’이라고 느껴질 만큼 고집스럽다. 이미 중형세단 시장에서 자리를 굳힌 SM5와 수요가 중복된다는 우려까지 감수한 선택이다.
SM6는 국내시장에 공개되기 이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후륜 서스펜션’ 논란에 “타보면 차이를 알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한 르노삼성 측의 자신감에 이목이 집중됐다. 기자 역시 ‘자신감의 근원을 파헤치겠다’는 생각으로 시승 기회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난 1일, 드디어 르노삼성이 기자들을 시승행사에 불러 모았다. 시승 출발장소는 양재동 aT센터, 국내차시장의 독보적인 회사인 현대·기아자동차의 사옥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곳이다. “현대·기아차가 만들어 놓은 국내 기준의 차급을 벗어나겠다”던 박 부사장의 발언과 묘하게 오버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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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르노삼성 |
◆못 보던 중형세단
aT센터 지하주차장에 줄지어 주차된 SM6. 어두운 지하주차장 내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빛’이다. LED램프는 일반 할로겐램프와 비교했을 때 수명과 밝기 등 성능상 장점을 가졌지만 최근에는 ‘디자인 요소’로 더욱 각광받는다.
SM6는 이전 르노삼성에서 출시한 모델과 비교했을 때 이 LED램프를 더욱 필수적인 디자인 요소로 만들었다. 전면부에 적용된 강렬한 헤드라이트를 주간주행등이 ‘C’자 형태로 감싸고 테일라이트는 직선으로 길게 뻗었다가 방향지시등을 아래로 감싸는 모양이다.
전면에서 봤을 때는 낮고 넓은 차체가 부각된다. 전고는 1460mm로 SM5(1485mm)에 비해 확연히 줄었고 K5와 말리부에 비해서도 5mm 낮다. 반면 전폭은 1870mm로 동급 중 가장 넓다. 주변에 있던 SM5와 비교해보니 넓고 낮은 비율이 확연히 눈에 띈다.
더욱 인상 깊은 점은 측면에서 봤을 때의 비례다. 오버행이 짧고 휠베이스가 길어 중형세단에서 찾아보기 힘든 외형이다. 오버행이 짧을수록 핸들링이 날렵하게 들어가고 휠베이스가 길수록 차가 더욱 길어보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제약으로 이런 비율을 유지하기는 쉽지않다. SM6는 전륜세단 중 오버행이 짧기로 유명한 폭스바겐 ‘파사트’보다도 오버행이 짧다. SM6의 유럽 판매 모델명인 ‘탈리스만’은 이러한 비율을 바탕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16 콘셉트카 전시회’ 전야제에서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준대형급의 휠베이스와 중형세단에 최초로 적용된 19인치 휠 등은 ‘탈 차급’을 선언한 르노삼성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뒷모습은 분리형 견인고리를 적용하는 등 ‘정리’에 초점을 맞췄다.
차량 내부로 들어갔다. 실내공간은 사실 최근 출시된 쏘나타 등 중형차와 큰 차이가 없다. 휠베이스가 더 넓음에도 공간활용이 효율적이지 못한 탓이다. 특히 대시보드가 다소 튀어나와 조수석 무릎공간에 불편을 주는 등 단점도 보였다.
전체적으로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느낌이다. 살이 닿는 곳곳에 소프트한 재질을 적용하고 시트를 비롯한 곳곳에 스티치로 포인트도 넣었다. 그랜저 등 준대형 세단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는 수준이지만 중형차급에서는 꽤나 고급스럽다고 느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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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르노삼성 |
◆S-링크는 혁신
이 차가 최고라는 느낌을 받는 포인트는 또 있다. ‘S-링크’ 시스템을 통해 차량의 주행과 편의사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차량내부에 장착된 대부분의 기능은 센터페시아에 크게 자리잡은 8.7인치 풀터치스크린 태블릿을 통해 조정할 수 있다. 덕분에 마치 테슬라 모델 S에서나 보던 ‘첨단’의 느낌이 살아난다. 터치스크린은 물론 기어노브 뒤편에 위치한 원형 조작장치로도 조작 가능하다.
특히 최고의 모바일 내비게이션이라고 평가되는 T맵을 8.7인치 대형화면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다. 이밖에 전화나 문자, 음악감상 등을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나만의 차로 세팅할 수 있는 운전자별 프로파일 설정이 가능한 '멀티 센스' 시스템도 탑재됐다. 컴포트, 스포츠, 에코, 뉴트럴 등 네 가지 기본 모드를 비롯해 운전자 설정이 가능한 퍼스널 모드까지 지원한다. 각각의 모드마다 액티브 댐핑 컨트롤(ADC), 스티어링 답력(무게감), 엔진과 트랜스미션의 응답성은 물론 엔진 사운드와 실내 조명, S-링크 디스플레이, 시트 형태 및 마사지 기능, 공조장치까지 맞춤별로 변환된다.
S-링크 시스템을 통해 후측방 경고 시스템을 비롯한 각종 센서의 민감도를 조정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 기능의 활용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다양한 차를 시승하다보면 센서가 과도하게 민감해 기능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S-링크의 가장 아쉬운 점은 현대차의 ‘현 위치’ 버튼이 없다는 것. 다양한 기능이 있다보니 각 기능에 들어가기 위해선 여러번의 터치를 해야 하는데, 이후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번의 동작을 거쳐야 한다. 어느 상황에서나 내비게이션으로 돌아갈 수 있는 원터치 버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동급 최고의 주행능력
다양한 장점이 있는 차지만 SM6의 최고 장점은 자동차의 기본기, 주행능력이다. 2.0가솔린과 1.6 터보를 시승했는데 특히 SM5 대비 1.6 터보엔진의 비약적인 발전이 돋보였다.
이날 마련된 시승은 양재동 aT센터에서 출발해 용인 기흥 르노삼성차 중앙연구소를 왕복하는 코스인데, 와인딩 구간 체험을 위해 중간에 캐리비안 캠프를 경유했다.
먼저 탄 차는 1.6 터보 모델. 드라이빙 모드를 에코모드에 맞췄음에도 바퀴가 처음 구르는 느낌이 경쾌하다. 고속도로로 진입해 속도를 높였다. 주행모드를 컴포트로 바꿔봤더니 꽤나 치고나가는 느낌이다. 스포츠로 변속시에는 배기량이 1.6에 불과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가속능력을 뽐냈다. 이전 SM5 TCE와 엔진 출력에는 큰 변함이 없음에도 훨씬 발전된 주행능력을 보인다. 이는 변속기의 차이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6속변속기가 적용된 SM5 TCE에 비해 변속감이 엄청나게 부드러워졌다. 문제였던 터보렉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주행모드를 스포츠모드로 놓더라도 4단에서 5단으로의 변속시점이 다소 빠르다. 킥다운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훨씬 더 스포티한 주행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 변속시점이 다소 빠른 이유에 대해 르노삼성 측은 “스포츠 모드지만 최소한의 연비는 잡기 위한 세팅”이라고 설명했다.
1.6터보 모델을 먼저 타고 2.0 가솔린차량으로 바꾸자 가속감에서 다소 답답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면 변화하는 엔진사운드에 비해 실제 차체의 가속은 따라오지 못한다.
하지만 두 모델 모두 와인딩 구간에서는 안정적이고 날카로운 코너링을 선보인다. 고속도로를 지나 캐리비안 캠프로 향하는 호암미술관길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왕복 4차선의 와인딩 코스다. 르노삼성이 랙구동형 전자식 파워스티어링(R-EPS)과 후륜 서스펜션인 AM링크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넣은 구간이다.
고속으로 와인딩 구간을 통과하는데 불안함이 없다. 바퀴축에 직접모터가 붙은 R-EPS의 핸들링 감각은 이 같은 구간에서 훨씬 날카로운 코너링을 가능케한다. 현대차의 MDPS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SM6의 가치를 높여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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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르노삼성 |
SM6 공개 이전부터 논란이 된 후륜 서스펜션 논란 또한 더 이상은 제기되지 않을 것 같다. AM링크 서스펜션만의 능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건 전자식가변형 댐퍼와 조합돼 승차감과 코너링에서 부족함을 느끼기 힘들다.
가격책정 또한 나쁘지 않다. 공간과 배기량의 한계를 넘은 것은 아니어서 ‘탈 차급’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겠지만 중형차 오너의 ‘자부심’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는 모델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