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종이와 2000년의 시간을 함께했다. 그 시간만큼 종이는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했다. 업무를 처리할 때는 물론 각종 지불정보를 담은 영수증에도 종이가 사용된다. 하지만 최근 우리 주변에서 종이가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고령층 등 정보소외계층 양산 우려
종이 없는 환경을 일컫는 ‘페이퍼리스’의 등장에 정부도 지난 8월 부동산계약을 전자문서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공공부문에서 전자문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보안솔루션, 디스플레이, 통신 등의 산업은 호황을 맞았고 제지와 사무자동화기기(OA)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페이퍼리스시대가 펼쳐지는 지금 전문가들은 페이퍼리스를 마냥 환영하기보다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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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가장 대표적인 페이퍼리스의 문제점은 정보소외계층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페이퍼리스는 그간 종이에 기록되던 각종 정보를 종이가 아닌 다른 매개체에 기록한다. 신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정보의 혜택을 누리기 어려워진다.
고령층의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지수는 모든 국민의 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60대가 55.5, 70대 이상은 28.7에 불과하다. 페이퍼리스가 생활에 스며들수록 고령층은 점점 뒤처지고 결과적으로 정보소외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단순히 정보소외에서 그치지 않고 디지털시대의 먹이사슬을 만든다. 이 먹이사슬은 정보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는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이렇게 발생한 정보소외계층은 사기 등 각종 범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종이에 익숙한 고령층의 경우 디지털기기를 사용하지 못해 정보를 습득하지 못할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이들을 위한 교육을 강화하는 등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안 문제도 넘어야 할 산
보안 관련 이슈도 페이퍼리스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종이에 기록된 정보나 오프라인으로 구성된 전자문서의 정보는 보안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해당 문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물리적인 제재를 하거나 보안인력을 배치하면 따로 신경 쓸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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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그러나 최근 페이퍼리스의 흐름은 종이를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업무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당연히 바코드 혹은 파일 하나에 이전과 달리 많은 정보가 담겨 공유·분배된다. 그만큼 접근하는 경로가 많아져 정보를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전자문서의 보안 위협경로가 여러 갈래인 만큼 보안기술과 솔루션도 다양해졌다. 가장 먼저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기술을 꼽을 수 있다. DRM은 전자문서를 암호화해 복호화 권한이 있는 사람만 해당 내용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다양한 장소에 맞춰 그 권한을 적용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보안수단이다.
‘DLP’(Data Loss Prevention)도 많이 사용되는 보안솔루션 가운데 하나다. DLP는 전자화된 문서가 외부로 나가는 경로를 차단·허용하는데 그 이동기록을 로그로 만들어 사고 발생 시 추적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DLP는 대부분의 기업이 사용하는데 사후 추적이 가능하지만 이미 유출된 문서는 회수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블록체인도 페이퍼리스의 보안 관련 문제점을 보완할 기술로 각광받는다. 가상화폐 기술로 잘 알려진 블록체인은 다수의 단말기 혹은 PC에 정보를 분산저장, 데이터의 무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등장한 페이퍼리스의 보안 방식 가운데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안업계 전문가는 “최근 해운업계를 비롯한 물류·유통업계가 블록체인의 특성을 활용해 페이퍼리스시대를 앞당기고 있다”며 “블록체인을 뛰어넘는 더 안전한 보안솔루션이 등장할수록 페이퍼리스산업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이 생산·소비 감소세… 대응은?
그럼에도 페이퍼리스의 흐름은 막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인쇄용지 생산량은 2012년 320만7348톤에서 5년 만인 2016년 277만9479톤으로 42만7869톤 줄었다. 국내 인쇄용지 소비량도 2012년 209만1333톤을 기록한 후 지난해에는 190만7101톤으로 18만4232톤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종이와 관련된 산업은 타격을 피할 수 없다”며 “기존 산업과 신기술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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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최근에는 OA기업들이 보유한 광학기술과 고객데이터베이스를 활용, 스마트워크 솔루션기업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한편 제지업체들은 화장품 및 고급포장지용으로 쓰이는 경면광택지(CCP) 등 고부가가치산업에 집중하면서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제지업체 관계자는 “종이 생산량과 소비량이 줄어드는 점은 페이퍼리스가 점차 우리 삶에 녹아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정보소외문제, 산업 사양문제, 보안문제 등 페이퍼리스가 불러올 문제점을 분석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인류가 종이를 발견했을 때만큼의 파격적인 변화를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0호(2017년 10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